그동안 한치의 양보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비자·마스타 양대 신용카드사가 국내사업에서 이례적으로 손을 잡기로 해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양사는 국내 5개 카드회원사들과 함께 그동안 각각 개별적으로 추진해오던 IC카드 기반의 신용·직불(EMV)사업에 최근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실무진 차원에서 합의를 끌어냈다. 이에 따라 올 연말로 예정된 양사의 IC카드 프로그램에서는 가맹점 단말기 등 전산 인프라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시범지역도 한곳을 선정, 힘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력배경=비자·마스타의 EMV시범사업 공조는 무엇보다 국내 회원사들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비씨·LG·국민·삼성·외환 등 국내 5개 카드사들은 어차피 두가지 브랜드를 동시에 취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이번 IC카드 시범사업이 개별적으로 준비될 경우 부담이 배가될 가능성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카드발행을 위한 시스템의 추가 구축비용뿐만 아니라 △시범사업 지역분산 △소비자 대상의 마케팅 △가맹점 확보 및 관리 등 신상품 마케팅체계 구축에 따른 제반 문제점이 대두될 수 있다.
특히 이번 협력에는 이같은 표면적 이유와 함께 마스타측의 요구도 상당한 작용을 한 듯하다. 지난해부터 「몬덱스」 IC카드 전자화폐사업에 총력을 쏟아붓고 있는 마스타로선 EMV사업 준비에 있어서는 비자에 비해 다소 늦었던 게 사실. 이에 따라 마스타는 지난해말 EMV사업을 일단 발표는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상황적 요인이 마스타가 먼저 손을 내밀도록 한 것으로 풀이된다.
EMV사업 선점 가능성이 높았던 비자도 강력한 회원사들의 요구에 밀려 일단 마스타의 「구애」를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미 본사로부터의 상당한 지원과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한 비자는 마스타의 준비상태를 감안할 때 공동보조를 취하더라도 마스타가 동시에 시범사업에 돌입할 가능성은 적다는 판단이다. 비자로서도 겉으로는 대승적인 면모를 내비침과 동시에 차세대 IC카드 지불시장도 선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추진 방향=이번 합의에 따라 일단 양사는 준비과정에서 독자적인 사업전략 및 프로그램을 제외한 시범사업의 마케팅·기술교육·가맹점모집 등은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의 대상지역도 비자의 여의도에 맞서 마스타는 명동을 내세웠으나 여의도로 귀착될 공산이 크다. 가맹점에 설치될 EMV단말기의 경우도 당초 5백대에서 최대 1천대 정도까지 늘려 설치될 것으로 보여 시범사업 공조는 한층 무게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선결과제=시범사업에 소요되는 단말기와 카드 발급비용은 일단 비자·마스타 양사가 부담키로 했다. 하지만 비씨·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카드사는 IC카드발급기를 신규 도입해야 하고 전혀 새로운 IC카드 지불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국내의 신용카드 환경은 EMV가 설계된 국제환경과 달라 시스템의 국내화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개별참여 회원사에는 이번 시범사업을 위해 2억∼7억원 정도의 전산투자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산 단말기를 채택함으로써 국내 IC카드업계가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EMV용 단말기 개발도 시범사업 이전에 완료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자·마스타 양사는 단말기 인프라의 구축비용을 어떤 식으로 분담할지 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와 함께 금융전산망의 보안을 관장하는 국가정보원 등이 IC카드시스템에 외산 암호알고리듬을 적용할 수 없도록 강제할 경우 사업이 난항을 겪을 소지도 안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