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PC메이커, 중국 현지업체와 제휴 확대

 「이길 수 없다면 제휴하라.」

 중국 PC시장에 진출한 세계 유명업체들의 전략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지명도를 앞세워 중국시장 공략에 나섰던 세계 유수의 PC업체들이 지금까지의 부진을 떨쳐내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잡기 위한 전략변화를 적극 꾀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세계 2, 3위의 PC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황금시장.

 세계 최대의 PC업체인 미국 컴팩과 노트북컴퓨터시장의 강자인 일본 도시바 등 세계 유수의 업체들은 따라서 일찍부터 이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들의 중국시장 공략 노력은 그동안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컴팩의 경우 5년전 베이징에 있는 「스톤그룹」과 합작회사를 설립, 중국시장에 진출했으나 현재 시장점유율은 4%에 머물고 있다.

 이 회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3%대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중국시장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컴팩은 지난해말부터 전략을 수정, 중국시장에 대한 재공략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컴팩의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현지 PC제조업체들과의 제휴 강화로 요약된다. 일례로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중국 북동부의 중공업도시인 셴양에 있는 소규모 PC제조업체인 「여명」에 자사 상표를 부착,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컴팩은 『우리보다 (중국)시장을 잘 아는 업체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이같은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지업체인 레전드의 성공사례가 이같은 전략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 레전드는 현재 중국시장에서 13%의 점유율로 2위인 IBM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IBM과 델컴퓨터·도시바 등 다른 업체들의 입장도 컴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탄탄한 판매망으로 무장하고 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지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지명도에 기반한 지금까지의 중국시장 전략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이들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최근 밀수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들의 현지 사업전략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값싼 제품을 제3의 업체를 통해 중국으로 들여다 판매해 왔던 많은 외국업체들은 더이상 이같은 방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업체는 갈수록 현지업체와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시장에서 외국업체들이 이같은 형편에 처하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시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세계 유명 PC업체들이 빠른 시간 내에 중국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다. 레전드와 같은 현지업체들은 잘해야 2류 업체로 봐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리 세계 유명업체들이 레전드에 밀리면서 이 업체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시장에서의 점유율 변화추세를 보면 이들 업체가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 보다 분명해진다. 현지업체들은 지난해 3·4분기까지 65%의 판매증가율을 보인 반면 컴팩·IBM·휴렛패커드 등 주요 외국업체들은 14% 증가에 그쳤다.

 이런 추세에 따라 중국시장에서 4대 외국업체들의 점유율은 1년전 21%에서 최근 19%로 떨어진 반면 현지 4대 업체는 23%로 늘었다.

 이에 따라 IBM·도시바 등 세계적인 업체들은 컴팩과 마찬가지로 현지업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들과의 제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시바는 최근 현지 PC업체인 「톤트루 정보산업그룹」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고 IBM도 「장성그룹」과의 합작사에 대한 지분을 51%에서 70%로 높였다.

 델컴퓨터의 경우 지난해 아모이 남부지역에 제조공장을 준공하고 현지인력 3백명을 고용하는 등 보다 현지화된 사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회사는 과거 말레이시아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해 판매할 때보다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델은 또 대고객 기술지원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무료 핫라인을 설치하고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판매에도 나서면서 「외국업체들은 현지업체에 비해 서비스 수준이 떨어진다」는 현지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켜 가고 있다.

 현지 분석가들은 외국업체들의 이같은 새로운 접근이 앞으로 중국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