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서버 입출력(IO)규격이 통일될 수 있을까.」
인텔진영의 「NGIO(Next Generation IO)」와 IBM·컴팩·휴렛패커드(HP) 3사의 「퓨처IO」규격이 차세대 서버 아키텍처 표준을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3사 연합측이 단일규격으로의 통일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두달 넘게 끌어왔던 양측의 긴장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3사 연합은 지난 11일 「퓨처IO 개발자포럼」을 열고 이 규격을 차세대 서버 아키텍처 표준으로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동시에 인텔의 NGIO진영과 통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도 밝혀 화해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3사는 인텔의 최대 고객인 데다 향후 서버시장에서 IO규격이 갈린다면 서로간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업체들도 단일 IO규격을 원한다는 분위기가 통합의 당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불꽃튀고 있는 양측의 버스전쟁에 휴전협정이 맺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IO버스는 시스템 안에서 프로세서와 HDD, 네트워크 어댑터등 주변기기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 따라서 버스규격은 시스템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아키텍처 중 하나다.
3사 연합측은 서버시스템의 기반인 프로세서를 공급하고 있는 인텔이 IO규격마저 장악한다면 차세대 서버 아키텍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지난달 중순 인텔의 NGIO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퓨처IO규격의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이달 12일 대규모 개발자포럼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퓨처IO진영은 이들 3사 외에 네트워크분야 선두업체인 스리콤과 대표적 주변기기업체 어댑텍이 확고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발표된 「NGIO」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엔터프라이즈급 소프트웨어의 처리요구와 급속한 프로세서 성능향상에 부응하기 위해 인텔이 2년 동안 20여개 컴퓨터업체들의 참여로 개발한 것이다. 여기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비롯, 델컴퓨터·히타치·지멘스·NEC·시스코시스템스 등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양측의 갈등은 기술적인 차이와 함께 지재권과 라이선스료 등 사업화에 관련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진행되고 있다.
우선 기술적으로 퓨처IO는 데이터 전송률이 양방향으로 초당 1GB씩 모두 2GB/s에 이른다. 이같은 속도는 이들 3사 연합이 지난해 9월 내놓은 또 다른 IO규격 「PCI-X」보다 2배 이상 빠르다. 또한 단일 채널버스가 아닌 멀티채널 구조를 채택해 전자상거래 및 핵심업무 애플리케이션 처리에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한편 NGIO의 핵심은 프로세서와 주변기기가 독립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주변기기의 핫스위핑을 가능케 하고 버스상에서의 트랜잭션문제, 즉 병목현상을 크게 해소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초당 데이터 전송률은 퓨처IO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퓨처IO진영은 NGIO규격이 급속히 변하는 서버기술 추세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NGIO가 내년중 제품으로 실현될 계획인 반면 퓨처IO는 올연말 승인을 거쳐 오는 2001년 1·4분기에나 이 규격의 서버제품이 출시될 예정이어서 성능이 우수하더라도 시기적으로 NGIO에 기선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
또다른 문제는 퓨처IO가 여러 종류의 칩과 호환이 가능한 데 반해 NGIO는 인텔칩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이 규격을 채택할 경우 인텔 의존도가 더 심해진다는 것이 퓨처IO진영의 주장이다.
즉 이들 업체는 인텔칩뿐만 아니라 PA-RISC(HP), 알파칩(컴팩), 파워PC(IBM) 등 각기 독자 칩도 써야 하기 때문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퓨처IO를 표준으로 밀고나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양측의 갈등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지재권 및 역학관계와 관련한 신경전에서 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퓨처IO와 NGIO는 근본적으로 양쪽 모두 교차구조(Switched Fabric) 및 채널기반 아키텍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뿌리는 비슷하다.
특히 교차구조는 속도를 크게 높일 뿐만 아니라 시스템 이상진단이나 운용중 부품교체 등의 기능을 보다 쉽게 하기 때문에 주변기기들끼리 데이터 통로를 공유해야 하는 현재의 PCI버스보다 시스템 성능을 월등히 뛰어나게 만든다.
따라서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표준화과정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이른바 기세싸움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3사 연합은 차세대 IO규격이 단일업체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되며 이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텔은 규격제정 과정에서 너무 독단적인 입장을 고집했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즉 NGIO규격 개발작업에 참여하려는 업체들이 이 규격을 충분히 검토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기술, 즉 지적재산권을 무조건 인텔측에 넘겨주도록 요구한다는 것다.
따라서 이들은 기술료도 인정하지 않는 인텔의 이런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태도에 반발, 독자적인 노선으로 돌아서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인텔은 NGIO규격은 무료로 공개될 것인데 여기서 기술료를 요구하면 규격을 실패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지난 12일 퓨처IO 개발자포럼에는 인텔의 관계자도 참가했다. 표면적으로는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퓨처IO규격에 대한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인텔은 이달 22일 NGIO 개발자포럼을 예정대로 개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양측이 의사표명 이상으로 규격통일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이같은 평행선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양측이 극적인 규격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