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로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웃음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사장실 안에서 울려왔던 것이다. 그 깊은 밤에 사장실에서 그러한 웃음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웃음에 뒤섞여 간헐적으로 속삭이는 여자의 목소리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 참, 사장님, 안돼요. 싫어요. 난 재미없어요.』
여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귀에 익은 비서 김양희였다.
『넌 재미없다고 하면서 더욱 좋아하더라.』
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약간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흔들어. 너 같이 허리가 잘록한 여자는 잘 흔들 수 있잖느냐.』
『힘이 든단 말이에요. 아이, 참.』
그들이 성합을 즐기고 있는 동안 나는 한동안 서서 엿들었지만 그러한 모양을 삽화처럼 그려넣고 보니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이 달아올라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일이 손에 잡히거나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이상한 불쾌감과 함께 최 사장과 김양희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후에 사장실에 들렀을 때 안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소파가 유난히 넓게 보였다. 그것은 소파라기보다 침대와 다름없었다. 더구나 사장실에는 전용 세면장이 따로 있었는데 그것도 여러가지로 효용가치가 있는 듯했다.
나는 부도덕한 그들의 사생활을 경멸한 것은 틀림없지만 소문을 내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나와는 무관한 일로 생각했다. 다만 김양희를 볼 때마다 그 깊은 밤 복도에서 울리던 웃음소리가 연상됐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평소 웃음소리도 그때와 비슷했다. 마치 흐느끼듯이 컥컥거리고 웃는 것이었다.
회사 연구실을 자취방으로 사용하면서 겪었던 유령소동은 단조로운 나의 생활에 새로운 것이었지만 별로 유쾌한 기억은 되지 못했다.
텔렉스 교환장치의 개발에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을 한여름에 여름옷을 가지고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기거하고 있는 회사 연구실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여관을 잡아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는 자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반찬을 한 보따리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을 연구실에 두면 냄새가 났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