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경영진단팀의 보고서를 토대로 마련된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 시안이 발표되면서 국민의 정부 들어 두번째인 행정빅딜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지난해 환란과 정권교체의 와중에 개편된 정부조직에 대해 1년여만에 다시 손질을 가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공청회 등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이달 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해 늦어도 5월 말에는 시행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공무원 사회의 동요와 우려는 물론 부처간 치열한 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정부조직개편안은 부처별 쟁점사안도 많고 개혁방향에 대한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아 성급한 판단을 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기구 중심의 지난해 1차 개편 때의 부처 통폐합과 달리 기능 중심의 조직과 인력구조 등 국정운영시스템을 혁신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운영시스템 혁신의 과제로 설정한 개방형 임용제도 확대나 성과관리제도 도입, 고객권리헌장제도 확대 등은 정부를 고객 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개편안의 제목을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대비한 정부운영 및 조직개편」이라고 설정한 것은 새 밀레니엄시대 환경변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이 진행됐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번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복병은 바로 부처이기주의와 정치권에 의한 왜곡이다.
각 부처들은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이번에 초점이 맞춰진 운영시스템보다 부처별 조직·기능개편안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또 정치권이 이번 개편안과는 별도로 자체적인 조직개편안을 만들어 협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점도 그렇다.
이번 정부조직개편과 관련,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안은 역시 산업 및 과학기술정책의 체계화이다. 21세기 정보사회의 핵심은 지식인력임에 틀림없고 지식·정보·기술로 무장된 인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 정부조직개편에서 꼭 실천해야 할 중점과제의 하나가 유사 중복기능의 통폐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자부·과기부·정통부 등 2, 3개 부처를 통폐합하거나 기초과학 인력양성 등 인력 재활용 기능을 교육부로 일원화하고, 정통부 해체시 대통령 직속의 「지식정보위원회」로 승격한다는 등의 방안이 제기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1차 개편 때 충분히 논의했던 내용들이고 또 「처」에서 「부」로 승격시킨 과기부를 1년만에 해체하는 것이어서 당시 개혁에 역행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문제도 있다.
대안으로 제시된 기능개편도 지식인력과 산업개발 관련기능의 강화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거의 5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4개월여만에 완성한 작품치고는 알맹이가 너무 부실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갈수록 복합화하는 기술이 통합·체계적으로 추진되도록 관련기능이 모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대적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 WTO체제에서는 시장경쟁원리에 입각해 산업체의 연구개발은 정부가 지원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앞으로 정부지원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또 21세기는 지식·정보시대인 만큼 이를 준비하는 조직도 필요하다.
정보화와 정보통신정책을 분리할 경우 재원고갈과 비효율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일이 촉박하다고 해서 여론몰이식 개편이 돼선 곤란하며 각계의 광범위한 의견을 종합해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경영진단조정위원회는 이번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대규모 행정빅딜은 없으며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작은 정부」라는 지향선상에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는 데 노력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제목과 달리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걸맞은 선진형 행정체제 구현에 대한 좀더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 아쉽다.
정부조직개편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는 걸핏하면 정부조직을 조령모개식으로 뜯어고치는 구습에서 벗어나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쳐 확정함으로써 과거의 시행착오를 겪지 말아야 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