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23)

 텔렉스 교환기 프로그램의 완성을 위한 축하연이 있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대대적인 자축연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적어도 내가 입사한 이래 처음 겪어보았다. 연회라고 한다면 보통 호텔을 빌려서 하는 것이 통례지만, 그날 따라 문 회장의 별장에서 열었다.

 문 회장은 생소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결코 생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회사의 자본주나 다름없는 모계 그룹의 총수였다. 최 사장이 유일하게 머리를 굽실거리는 상대이기도 하였다. 문 회장에게서 전화라도 걸려오면 최 사장은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문 회장은 기업을 세운 사람이 아니고 그의 선대가 일으켜 놓았다. 사진에서만 본 일이 있는 문 회장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컴퓨터 회사의 모든 직원이 참석했다.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그룹사의 임원들이었다.

 『젊은이가 수고했어.』

 문 회장이 악수를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을 겨우 넘어서 그렇게 늙은 입장도 아니었지만 그의 말투로 보면 자신이 상당히 나이들어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내 손을 흔들면서 한 팔을 올려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잔뜩 겸손한 표정을 지으면서 회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바로 옆에서 최 사장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웃고 있었다. 그의 대머리가 별장의 옥외 등에 비쳐 밥상처럼 번쩍거렸다.

 『아주 재주가 있는 친구입니다.』

 최 사장이 말하면서 웃었다. 술이 몇 잔 들어갔는지 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숨소리가 가쁘게 들렸다.

 회장이 악수를 하고 나자 그룹사의 임원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몇 사람은 사진에서 언뜻 본 일이 떠올랐지만 다른 임원들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임원 가운데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문 회장의 여동생으로 보였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통통하게 살이 쪄 있는데다 화장을 짙게 해서 얼굴이 번쩍거렸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언제 시간이 있으면 백화점으로 와서 날 찾아요. 뭘 좀 선물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백화점이라니요? 누구신지요?』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그녀의 신분을 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비틀어지자 잘못 물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백화점에 오라고 하면 그녀가 그룹사에 소속되어 있는 동아백화점 사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