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HP와 소니의 기업 재편 의미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정보통신업체인 휴렛패커드(HP)와 소니가 최근 잇따라 대대적인 기업 체제개편을 단행한 것은 2000년 이후의 기업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정보기술시장에 엄청난 반향과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이번 체제개편은 지금까지 내용적으로 관계가 미약했던 것들까지 한데 묶어놓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조직을 분산 위주에서 집약 중심으로 개편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양사는 향후 한두 곳에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켜 미래의 기업 경쟁에 대비해 나간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번 개편은 HP는 기업분할식, 소니는 조직집약식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향후 전 산업계로 파급될 전망이다.

 HP는 컴퓨팅 및 이미징과 계측기를 완전 분리해 2개의 독립법인으로 회사를 분할했다. 60년간 이어진 HP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조치인 동시에 향후 정보기술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혁명적인 개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HP의 분할은 지금까지 연관성이 없었던 컴퓨터 및 관련 사업과 계측기사업을 완전히 분리시킴으로써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혹 떼어내기식 분사가 아니라 조직 전반의 활성화를 위한 전향적인 분사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 회사의 루이 플랫 회장도 이번 조치의 핵심을 민첩함과 신속함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경영진들은 너무나 신중한 나머지 과감한 의사결정에는 항상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따라서 시장변화에 대한 대처도 언제나 한발 늦었다』고 고백했다. 조직의 몸무게를 줄여 의사결정을 신속히 함으로써 급격히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겠다는 의도다.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하고 있고 또한 HP의 뿌리로 자타가 공인해온 계측기 부문을 떼어낸 HP의 노력은 21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환골탈태하려는 최고위층의 의지의 결실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94년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독립채산제나 사업본부제와 비슷한 사내분사제인 「컴퍼니제도」를 도입, 각 사업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한 바 있는 소니는 최근 이를 능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함으로써 일본 기업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의 체제개편은 지금까지 조직분산 방식의 체제에서 조직집약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소니는 가정용 게임기업체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 등을 완전 자회사로 흡수하는 한편 기존의 컴퍼니제도를 대폭 수정해 10개의 컴퍼니를 4개의 사업본부로 재편, 집약하기로 했다. 또한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SME)와 소니 케미컬, 소니 플레시전 테크놀로지 등 상장 자회사 3사를 내년 1월까지 전액 출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번 소니의 체제개편은 디지털시대의 급격히 변화하는 경쟁구조에 적극 대응키 위해 기존의 컴퍼니제를 통한 조직분산보다는 조직을 강력히 통괄하는 체제가 더욱 효과적이라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니는 이와 함께 현재 전세계 약 70개 공장 및 사업소를 내년에 60개로, 이어 2002년에는 55개로 집약하고 인력도 10% 정도 감원할 계획이다.

 HP와 소니의 체제개편은 IMF 이후 기업매각 및 분사 등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선 국내 업계의 움직임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다만 그 규모와 전격성에서 국내 업체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사는 기업 전체의 운명을 바꿀 정도의 규모로 체제개편에 나섰으며 가혹할 정도의 전격적인 조치들을 일시에 실시한 점이 다르다.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바람으로 최고경영자들이 총대를 메고 제 살을 도려낸 것이다. HP와 소니의 이번 체제개편을 면밀히 살펴보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해답이 담겨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포드와 도요타의 조직개편이 산업사회의 포문을 활짝 열었고, IBM과 AT&T의 조직개편이 디지털시대의 서막을 장식했다면 HP와 소니의 조직개편은 21세기 정보기술시대의 대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