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제표준화와 경쟁력

 지적재산권이 날로 강화되면서 표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대량의 정보를 양방향으로 주고 받는 멀티미디어시대에는 각종 단말기 및 장비의 기술 개발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국제적인 표준규격의 동향을 파악하고 표준화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경쟁력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시대에선 정보의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정보의 성격 또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양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수불가결하다.

 때문에 다가오는 밀레니엄시대에 유망 분야로 부상하고 있는 멀티미디어산업에서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 하는 문제는 표준화에서부터 승패가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준화에 동참하지 못하면 원천기술에서 뒤떨어질 뿐 아니라 막대한 로열티 부담까지 떠안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의 제조기술만으로는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국내 전자산업은 그동안 원천기술 없이 관련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시대에는 생산기술에만 의존해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다.

 지난 90년대 초 인텔의 특허료 공세로 PC의 제조비용 상승을 초래, 결국 국내 PC산업이 하루아침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벼랑 위에서 좌절해야 했던 것이 좋은 사례다.

 최근에도 디지털TV나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등 국내 멀티미디어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 업계가 디지털TV와 DVD 등에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MPEG2라는 동영상 표준기술 분야에서 관련특허를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 등 MPEG2의 특허보유 업체들이 이들 멀티미디어 상품에 대해 특허료를 요구해올 경우 국내 업계는 막대한 로열티 부담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제품생산은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국·유럽·일본 등지의 수많은 업체들이 MPEG2의 국제표준화 작업에 열을 올릴 때 국내 업계는 이에 대한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업체들은 MPEG2의 표준이 멀티미디어산업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인식하고 표준화 초기부터 국제적인 표준화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인터넷 분야의 석권을 노리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나 선을 비롯해 AT&T·모토롤러·텍사스인스트루먼츠, 프랑스 프랑스텔레콤·톰슨, 네덜란드 필립스, 일본 마쓰시타·도시바·샤프·NTT·소니 등 내로라하는 세계 굴지의 업체들이 이 분야의 세계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들은 국제표준규격에 자신들의 기술을 최대한 반영시키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결과 MPEG2에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관련표준을 제정하고 이를 특허로 등록해 놓고 있다.

 특히 유럽의 경우 전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차세대 멀티미디어 부호화기술 개발 프로젝트가 여러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 결과물들을 MPEG에 제안하고 반영시키고 있을 정도다. 다행히 멀티미디어 국제표준은 MPEG2에만 머물지 않고 MPEG4·MPEG7 등 새로운 기술을 반영하는 표준화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들어 국내 정보통신업계가 MPEG4 등 새로운 표준화작업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MPEG4의 국제표준 전단계에는 이미 국내 업계나 연구계가 개발한 기술이 13가지나 반영돼 있으며 해외에서 적지 않은 로열티 수입이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업체들이 세계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멀티미디어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제적인 표준규격 제정에 우리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대다수 업체들은 표준화활동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는데다 국가적인 지원도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계표준을 주도하는 그룹에 편승하지 못하면 영원한 기술종속기업, 2등 국가의 대열에서 끝내 탈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세계표준에 대한 관심과 참여활동을 배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