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반 소프트웨어 개발 파트에는 다른 연구병이 세 명 있었다. 고참인 윤일구 병장과 그 밑에 우성호 상병과 기도식 상병이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앞서 입영한 통신반 고참들이었다. 그들 중에 윤일구 병장과 우성호 상병은 대학 전산과를 졸업했고 기도식은 전산과를 다니는 도중에 입대했다. 가장 오랫동안 있었던 윤 병장은 그동안에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이제는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일을 하지도 않았다.
『난 석달만 죽으면 제대야. 그러니 나보고 뭘 하라는 말은 하지 마라. 너희들이 알아서 하란 말이야.』
윤 병장은 키가 작달막하고 몸집이 뚱뚱했다. 목덜미가 굵고 눈이 옆으로 쭉 찢어진 것이 인상으로는 불량배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없이 여렸는데, 길가에 거지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줬다.
『거지에게 돈을 주면 거지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구걸을 하겠니.』
그는 거지에게 선심쓰는 것을 합리화시켰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러나 거지도 가짜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멀쩡한 놈이 편하게 살려고 거지짓을 하는 경우지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거지는 거지야. 거지짓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야. 자네는 할 수 있겠나?』
일요일에 함께 거리로 나와서 무슨 영화를 보러 갈 때 그가 단성사 앞을 지나면서 말했다. 우 상병과 기 상병은 아무 말 없이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거지도 비즈니스가 필요한 듯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지요. 전철 안에서 구걸을 하는데 그냥 돌자 별로 걷히지 않아 찬송가를 불렀답니다. 그러자 돈이 더 많이 걷히더랍니다.』
『염불을 하면 더 많이 걷힐지 모르겠군.』
우 상병이 말하고 혼자 웃었다. 별로 우습지 않아서 다른 사람은 웃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저녁 외식을 했다. 윤 병장이 특별히 생긴 돈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샀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여러 병 비웠다. 술이 얼근하게 들어가자 윤 병장이 나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야, 최 일병. 너 딱지 떼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