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반독점" 화해안 합의 의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인텔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혐의 조사가 재판에 들어가지 않고 화해로 종결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화해안이 앞으로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97년 9월부터 시작된 FTC의 인텔에 대한 조사는 지난해 6월 반독점법 제소로 이어져 지난 9일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양측이 재판 전날 극적으로 화해안에 합의함으로써 업계에 일던 「태풍의 눈」의 위력을 크게 약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칫 인텔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업계의 판도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었던 반독점 혐의에 대한 조사가 화해로 마감되면 인텔과 경쟁업체 모두 일정한 성과물을 나눠갖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최고경영자(CEO)가 화해안에 대해 양측이 모두 승리하는 「윈윈안」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인텔과 FTC가 합의한 화해안의 핵심은 인텔이 신기술 정보나 신제품 샘플을 고객업체에 차별적으로 제공하지 않으며, 다만 상대업체가 제공된 정보를 공개하거나 이를 이용해 경쟁 칩을 만드는 경우, 인텔을 상대로 칩 제조 및 판매금지처분 소송을 내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 한해 정보제공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FTC의 로버트 피토프스키 의장은 이에 대해 인텔과 인텔 경쟁업체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화해안을 만들었다며 『어느 편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가 균형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화해안에 따라 인텔이 고객업체의 특허 등 지적재산권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상의 크로스 라이선스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업체들엔 신기술정보 제공을 중단하거나 중단위협을 해왔던 관행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를 FTC가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FTC가 인텔을 제소하게 된 중요한 배경의 하나가 인텔이 칩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인터그래프와 컴팩 및 디지털이퀴프먼트 등 고객업체의 지적재산권에 접근하기 위한 무기로 자사 칩 정보의 제공을 중단하는 부당한 행위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시장에서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춰볼 때 신제품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인텔 칩에 기반한 제품을 생산하는 고객업체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이용한 보복행위라는 지적이었다.

 FTC와 인텔의 화해안은 바로 이같은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인텔이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화해안으로 인텔은 자사에 대한 반독점 시비를 일단 잠재우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사의 정당한 지적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는 분위기다.

 FTC가 화해안을 마련하면서 당초 혐의를 두었던 인텔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점적 지위에 있는 업체는 지적재산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에서도 크게 후퇴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인텔은 자사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정보제공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는 생색을 내면서 챙길 것은 대부분 챙긴 셈이다.

 인텔은 특히 이번 화해안이 앞으로 자사와 고객업체간의 지적재산권 분쟁해결의 준거틀로 작용할 것이라며 크게 환영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인텔의 지적재산권 접근요구를 거부해 피해를 당했던 컴팩·인터그래프 등 이 회사의 고객업체들도 현재로선 대체로 화해안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디지털 인수를 계기로 인텔과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컴팩은 물론이고 현재 인텔과 지적재산권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인터그래프도 화해안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당초 FTC가 문제로 삼았던 인텔의 독점적 지위와 이에 근거한 부당경쟁 혐의는 이번 화해안 합의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불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FTC 내부에서도 이번 화해안에 대한 합의와 당초 인텔에 제기된 다른 혐의들에 대한 조사는 별도의 문제라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의외의 사태로 문제가 비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FTC는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칩세트 등 관련시장을 장악했는지 △중요한 기술표준들에 대한 지배력을 악용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칩업체 등에 피해를 주었는지 △경쟁회사의 칩을 사용하는 PC업체들에 부당한 제재를 가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화해안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