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기술 선진국을 앞지르려면

 얼마 전 신문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반도체 메모리시장에서 41%를 점해 일본을 제치고 1위가 됐다고 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세계시장 1위를 점하는 품목은 컬러TV도 있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휴대전화도 있다. 전자교환기는 자체개발 능력 보유 6개국 중의 하나다. 전자산업 외에 조선과 철강도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기타 오토바이 헬멧, 낚싯대 등 국산품이 제1위인 품목들도 많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현상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힘겨운 투자계획을 세우고 모험을 건 사업결단을 내렸으리라. 연구원과 기술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해외시장 개척에도 우여곡절과 힘겨운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정책과 능력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보다는 긍정적 평가를 외국친구들로부터 더 많이 듣는 편이다. 아쉬움과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개발노력은 선진국을 향한 이정표를 따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나아가는 다음 21세기에는 국제경쟁력은 과학기술력과 더욱 밀접하게 연계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열거한 우리의 긍정적인 면과 다른 편에 있는 취약점들을 서둘러 보완해야 할 것이다. 원천기술의 확보가 없는 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10∼20년간 원천기술 위주의 강력한 기술개발 계획을 수립,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IMF체제 이후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하고 과학기술 정책·투자 및 연구사업 관리효율화, 평가제도 개선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이에 첨가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정부의 국정 목록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우선순위가 상향조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의 경제력·문화·사회·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막중할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높아져 갈 터이므로 우선 순위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라 여겨진다. 선진국의 대통령처럼 우리도 주요 과학기술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정책 수립이나 사업관리를 과학기술 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이다. 전문가가 맡아도 어려운 기술개발 기획·관리·평가 업무를 비전문가가 맡아서야 어떻게 소신을 가지고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는 결국 국가경영 모든 분야에 과학기술 문화의 확산을 가져올 것이며 국가를 경영하는 관료조직도 분야별로 전문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를 2002년까지 GNP 대비 5% 이상으로 늘려나가자는 국민적 합의가 지켜지기 바란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이후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상용기술 개발의 정부지원 금지와 자유시장 경쟁논리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과학기술 투자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정보통신을 비롯해 생명과학·식량·에너지·환경·교통·해양자원 등 국가경쟁력에 직결된 기술개발은 민간에 맡겨 놓고 정부가 방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정부출연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의 국제경쟁력을 길러주기 위해 연구기관의 자율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연구비 사용절차에 정부예산 집행과 별도로 유연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연구예산 집행기준 및 절차와 회계결산 및 감사제도는 국제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완화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장기비전을 우선 제시하고 그 비전에 맞는 연구개발 장기계획을 만들어 그 계획에 따라 연구예산을 배정하고 그 투자효과를 평가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80년대 말에 G7과제를 마지막으로 범국가적인 연구프로젝트가 없었으며 그나마도 90년대에 들어와서는 G7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부처별 과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단기사업이든 장기사업이든 반드시 그 결과를 전문적으로 엄격히 평가해 성패와 상벌을 가리는 시스템을 정립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큰 현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는 10년내에 기술 선진국들에 앞장설 수 있다고 믿는다.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