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회계연도 마감 앞둔 日반도체 제조업계

 악몽과도 같은 98회계연도(98년 4월∼99년 3월)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는 일본 반도체 제조관련업계는 매우 우울하다. 속속 들려오는 98년도의 결산 추정치가 상반기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지난 한해의 아픔이 솔솔 배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황악화에 따른 생산업체들의 설비투자 억제 경향이 최소한 2년 정도는 지속돼 가장 규모가 큰 제조·검사장비의 판매액은 일러도 2001년을 넘어서야 전년실적을 웃돌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2000년부터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도 여러 전망기관들이 내놓고 있으나 이래저래 장래가 불확실한 시장상황과 현실로 수치화돼 나타나고 있는 적자로 관련업체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98회계연도에 일본 반도체 제조장비업계에서는 납품의 연기와 취소가 과거 어느 해보다도 많았다. 이 영향으로 매출은 급속히 감소했으며 판매가격도 덩달아 하락했다. 당연히 이익도 대폭 줄어들어 일부업체는 존폐의 위기까지 맞고 있는데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을 경계로 분야별 업체 우열이 한층 확실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 반도체 제조·검사장비업계는 지난해 예상실적의 하향조정을 두세 차례 반복했다.

 가장 대표적인 업체가 일본 주요 반도체 제조·검사장비업체인 고쿠사이전기로, 지난해 5월 시점에서 경상이익 33억엔을 예상했으나 10월에는 1억5000만엔으로 하향 조정했고 올 2월에는 이를 22억엔의 적자로 수정해야 했다. 당초 33억엔의 흑자예상이 10개월만에 22억엔의 적자로 전락해 예상치지만 무려 55억엔의 경상이익 감소를 경험한 것이다.

 일본 최대 스테퍼업체인 니콘도 마찬가지 경험을 해야 했다. 니콘은 최근 98회계연도는 92년 이후 6년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확실시되며 적자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40억엔 가량 큰 100억엔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니콘은 회계연도 초기에는 98년 실적을 매출 2900억엔, 경상수지 흑자 20억엔으로 책정했으나 지난해 9월에 이를 매출 2700억엔, 경상수지 적자 50억엔으로 수정한 데 이어 최근에는 매출이 200억엔 더 줄어들고 경영수지 적자는 100억엔이 될 것이라고 재조정한 것이다.

 97년에 86억엔의 흑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가 98년에는 100억엔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니콘은 근본적인 채산성 개선방안 마련에 여념이 없다.

 니콘 적자전락의 최대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스테퍼 판매의 부진이다. 판매대수가 전년대비 40%나 감소한 250대 전후로 떨어졌다.

 일본 반도체 제조·검사장비관련 상장업체 20개사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로 전락한 업체는 8개사, 당기최종적자를 기록한 업체는 절반인 10개사에 이른다. 나머지 10개사도 시바우라메커트로닉스를 제외한 9개사는 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도체 제조·검사장비가 전업이 아닌 기업들은 대부분 적자전락은 면했으나 제조·검사장비의 판매부진으로 실적향상에는 실패했다. 또 기계부품업계에도 반도체 제조장비관련 장비의 침체는 실적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관련업체들이 반도체 불황이라는 같은 이유로 예외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업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일본 최대 반도체 테스터업체인 어드밴테스트의 경우 매출은 전년대비 44% 감소했으나 매출 경상이익률은 19.2%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회사는 거품경제 붕괴 직후부터 대규모 경영합리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그 결과 매출의 대폭 신장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테스터와 계측기를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함으로써 높은 이익 수준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급속한 실적악화에 떠밀려 할 수 없이 기업합리화와 사업재편에 착수한 기업과 그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근 반도체는 배선기술의 미세화를 통한 대용량화와 고속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제조·검사장비업체에 대한 기술적인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혹독한 불황에 시달렸던 일부 관련업체들은 확대 일변도인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비 부담에 넋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부 주요업체들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보다 확고히 한다는 방침 아래 대책수립에 여념이 없다.

 니콘은 단기적으로는 단가가 높은 엑시머방식 스테퍼 출하를 늘려 적자경영 탈피를 꾀하고 장기적으로는 불소다이머 레이저 스테퍼와 전자빔 스테퍼 등 첨단제품 개발을 가속화해 안정적인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회사는 또 IBM 등 주요 업체들과 제품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등 투자비 절감을 위한 제휴에도 힘쓰고 있다.

 또 일부 중견 반도체 테스터업체들 가운데서도 무리한 연구개발 대신 해외 유력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갱생의 길을 모색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해 새로운 업계구도 정착이 가시화되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앞으로 200㎜에서 300㎜ 웨이퍼로의 전환, 알루미늄 배선에서 구리배선으로의 전환, 고속 대용량 D램의 본격 양산 등 기술혁신과 관련된 큰 분기점을 넘게 된다.

 따라서 관련업체들은 지금 어떤 형태의 전략을 취하느냐에 따라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지 아니면 더욱 하락해 완전히 좌초되고 말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2, 3년을 반도체 제조관련업계 재편의 분수령으로 판단하고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