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킬러 애플리케이션 (8);킬러앱 (4)

 이러한 중세의 킬러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의 몰락 이후 중부 유럽을 지배했던 독일계 부족인 프랭크족이 아시아의 의장으로부터 도입한 말 등자(?子)다. 등자의 등장으로 기사들이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도 창으로 찌르는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힘이 커졌다. 이에 따라 침략자들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서유럽을 침략해 약탈을 일삼던 사라센족을 퇴치할 수 있었다.

 프랭크족의 족장인 찰스 마텔은 자신의 성공을 뒤돌아보면서 이전의 새로운 무기나 전투기법과는 달리 등자는 그의 군사력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 이상을 실현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등자는 그의 전반적인 군사 전력을 변화시켰다. 등자로 인해 기병대가 등장할 수 있었으며 이는 전투 방정식의 새로운 요소가 됐다. 그리고 찰스 마텔은 그들을 영속적인 기능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찰스 마텔과 그의 후손 어느 누구도 그들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장기적인 영향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마대의 전문 전투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찰스 마텔은 인력과 말, 전문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그들에게 토지를 하사해야 했으며 또한 이 토지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새로운 지주 귀족 계급의 창설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가톨릭 교회의 광범위한 보유지 일부를 강탈했으며, 중세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를 영원히 변경시켰다. 찰스 마텔은 또한 토지를 경작하는 영세 농민들이 왕에게뿐만 아니라 기사로 알려지기 시작한 지주들에게도 응답할 수 있는 정치·사회 시스템을 창출했다. 결국 교황은 찰스 마텔의 손자인 샤를마뉴 대제에게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작위를 수여했으며 이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인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비천한 등자가 중세 유럽의 정치·사회 및 경제구조를 재정렬하는 데 특이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신성로마제국은 여러 형태를 거쳐 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됐다. 기마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등장한 사회·경제 시스템인 봉건제도는 그 당시 전통으로부터 불시에 극단적으로 단절되는 것을 대변했다. 이는 전투에서의 등자의 실제 장점이 여타 수많은 발명품들로 대체된 훨씬 이후에도 거의 1000년간 지속됐다. 화이트씨는 『등자만큼 단순한 발명품도 없었다. 그렇지만 역사에 그렇게 혁혁한 영향력을 지닌 것도 거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실례에서 볼 수 있듯이 킬러앱은 중요한 영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킬러앱의 부차적인 효과는 당초 의도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 일례로 제럴드 포드는 지난 1976년 미국인들에게 무료통화 전화번호를 제공했다. 현재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대한 일반인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로 창출한 「800」지역 코드가 곧 24시간 콜센터를 비롯해 TV홈쇼핑과 같은 서비스와 통화 판매 매출에 혁명을 일으키고 또한 아일랜드와 같은 재원이 부족한 국가들과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주요 재원을 창출하리라고는 그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IBM이 조그만 협력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장착한 퍼스널 컴퓨터의 자체적인 마케팅이 자사의 메인프레임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황폐화시키고 또 단 몇년 만에 그들의 컴퓨터업계 지배력을 분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