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40)

"송혜련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내가 말을 바꿔서 말했다. 경비원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한쪽 창구에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그 여자는 다섯번째에 있는 옥수수를 까놓은 것 같은 말쑥한 여자였다. 내 나이 또래로 어려 보였고 얼굴은 미인형이라기보다 무척 귀여운 인상이었다. 소대장도 나처럼 미인형 여자보다 귀여운 여자를 더 좋아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나는 그 여자 앞으로 갔다. 앞에 여자 손님 한 명이 있어서 나는 그 뒤에서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자 송혜련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메모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송재섭 소위님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이것을 전해 주라고 해서요."

"아, 예. 전화 바았어예. 잠깐 기다리시예."

그녀는 나의 메모지를 받아들고 그것을 보았다. 그 메모지에 은행구좌가 적혀 있는지 그것을 어딘가에 입력했다. 나는 그녀가 기다리라고 해서 그대로 서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핸드백을 열고 통장을 꺼내더니 거기에서 돈을 인출해서 어딘가로 입금했다. 창구 앞에 서서 지켜보던 나의 판단으로는 그녀는 애인의 통장을 대신관리하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무엇인가 정리하더니 현금을 꺼내 봉투에 넣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봉투는 불룩했다. 그 봉투를 그냥 내밀려고 하다가 입구를 스카치 테이프로 봉했다. 아마도 나를 처음 보니까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해주세예."

"그냥 전해주기만 하면 됩니까?"

"예, 되었십니더."

"다른 건 전할 것이 없나요?"

나는 주책없게도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물었다. 이를테면 연애편지 같은 것은 없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 되었시예. 안녕히 가세요."

여자는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어투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뒤섞였다. 그러나 경상도 어감이 더욱 강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송재섭소위를 찾아가서 그 봉투를 전해주고 말했다.

"저기, 소대장님 애인 예쁘던데요?"

"뭐라카노? 니 무슨 말 하노?"

송재섭 소위가 어리둥절해 하면서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