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42)

 통장에는 2500원이 입금됐다.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었지만 그곳에서 한없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송혜련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로도 나는 큰 수확을 얻은 셈이다. 더구나 그녀가 손수 만들어준 통장을 가지게 됐던 것이다. 그 통장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다녔다. 은행 통장이기 때문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송혜련이 만들어줬다는 사실 때문에 마치 그녀를 가슴에 품는 기분으로 지녔던 것이다. 2500원이라는 적은 돈이었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 거금이 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송혜련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은행 창구 직원에 대한 짝사랑은 나에게 하나의 활력소가 됐는지 모른다. 그것은 고통스런 일이기도 하지만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항상 컴퓨터와 책 속에 파묻혀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로서는 젊음을 찾은 것이다. 그 젊음은 밤마다 그리움과 함께 왔다. 나는 밖으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은행으로 갔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냥 그녀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어색했다. 자연스런 것은 돈을 저축할 경우인데 저축할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찾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은행 밖에서 지나치며 안을 힐끗 들여다봤지만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약간의 돈이 왔다. 배고플 때 사먹으라고 하면서 2만원을 부쳐왔다. 나는 송혜련을 만날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여간 기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난 다음 외출증을 끊어 밖으로 나갔다. 단숨에 은행으로 달려가 송혜련 창구 앞에 줄을 섰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서 줄을 서야 했다. 팔에 완장을 두른 은행 직원이 비어 있는 창구로 나를 안내하려고 했지만 나는 줄을 이탈하지 않았다.

 『손님, 저쪽 창구가 비었으니 그리 가시지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대로 섰다.

 『저쪽으로 가면 빨리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아는데 괜찮다니까요.』

 은행 직원은 더이상 아무 말이 없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좀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눈치였다. 이상할 것은 없다. 나의 마음을 안다면 이상하다고 못할 것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만남인가. 내 생애에서 이렇게 간절한 기다림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 그것을 안다면 어떻게 저쪽 창구가 비었다고 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