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종된 관계부처 공조체제

 디지털방송·케이블TV·게임·콘텐츠 등 차세대 핵심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일부 주요 현안업무에 있어서 정부 부처간 또는 산하단체간 업무중복이나 엇갈리는 정책 등으로 혼선이 심상치 않게 야기되고 있다.

 디지털 TV방송과 관련해 방송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와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정보통신부간 상호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통부가 디지털TV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잇달아 발표, 문화부와 방송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케이블TV와 관련해서도 프로그램공급사(PP)가 위성을 통해 직접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통부가 전격 발표한 데 대해 문화부와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국(SO)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 부처 산하단체간 업무중복과 마찰 또한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다.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최근 문화부 산하단체로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근거, PC게임 등에 관한 등급을 사전심의하고 있는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의 한 외산 PC게임에 대한 1년 전 심의등급 판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려 충격파를 던졌다.

 사실 정통부는 소프트웨어를 업무영역으로 끌어온 이후 콘텐츠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게임·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부터 문화부와 업무영역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온 터라 이같은 양 기관의 판정 충돌은 두 부처간 신경전의 연장으로 비치기도 했다.

 방송·케이블TV·게임·콘텐츠산업 분야에서 이처럼 정부 부처간 및 산하기관간에 정책의 충돌 혹은 불협화음이 일고 있는 것은 이들 업무를 여러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데다 부처간 협조·협의 체제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부처들의 성향이 다르고, 특히 「책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처가 다른 부처에 비해 크게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도 부처간 갈등과 정책혼선의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수년째 정치적인 이유로 변화가 억눌려온 방송산업을 비롯, 문화산업 분야 전반에 대한 법적 토대 개편작업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는 등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혁명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는데다 정부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으로 일부 부처 내부나 산하기관에서 일종의 「레임덕」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과거 권력 핵심기관이 행사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조정기능을 갖는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반 여건이 복잡 다단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부처마다 제각기 길을 가려하는 양상이 지속되는 것은 곤란하다. 국민이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정부 부처가 서로 엇갈리는 말을 하고 상이한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 정부 부처간은 물론 민간에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산업에 대한 책임이 덜한 부처가 선심성 지원이나 업계의 요구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정책을 펴 나갈 경우 산업계에 「선택」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주무부처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게 됨은 물론 예산 등 국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심의)을 행사하는 단체가 역시 같은 정부 산하단체가 내린 판정을 뒤집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야기된 이른바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청소년 유해여부 논란」은 기본적으로 정부 부처간 대화의 통로가 경색된데다 나아가서 부처들이 영역 넓히기에 급급해 정부의 신뢰성이나 힘의 집중을 통한 효율 따위는 뒷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게임에 관한 주무부처가 있는데도 게임관련 민간단체나 학회가 모두 정통부 산하로 등록한 것 역시 해당 부처들이 한켠에서는 관련 산업계가 만족할 정도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켠에서는 영역의 선을 넘어가며 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양비론을 펴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쪽도 잘하고 있다고 봐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사안을 연관된 두 부처가 관할하는 것은 마치 머리 둘 달린 독수리와 같다. 협력과 업무분장이 잘 될 경우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서로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며 반목할 경우 오히려 전체를 곤경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부처 및 산하단체 관계자들이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