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반도체업계, 인텔 "투자 제의" 거절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최근 미국 인텔의 그늘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은 인텔이 장려하는 메모리 분야에 연구·개발 및 생산과 관련한 투자를 집중해 왔으나 최근 들어 투자 여력을 분산시키고 제품 종류를 다양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인텔은 차세대 PC용 주기억 메모리로 기대를 걸고 있는 다이렉트 램버스 D램(DRD램)의 조기 시장 형성을 위해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미국과 한국의 유력 반도체업체에 DRD램용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총 6억달러의 출자를 단행,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인텔은 이어 미쓰비시전기·NEC·도시바 등 일본의 반도체업체 3사에도 이같은 출자 제의를 했으나 일본측의 대답은 「노」였다.

 DRD램을 둘러싼 이같은 움직임은 인텔과 일본 반도체업체의 관계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PC시장의 호경기에 편승해 인텔이 채택하는 메모리를 개발·양산하는데 앞장서 온 지금까지의 일본 반도체업체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인텔은 DRD램의 보급을 위해 거액의 자금 투입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반면 일본 반도체업체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최근에는 『더이상 DRD램에만 주력할 수 없는 상황이며 개발 우선순위도 다른 D램과 동등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다른 아키텍처를 채택한 메모리 사업을 모색하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인텔이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온 업체들이 서서히 다각화를 통한 일종의 독립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반도체업체들은 인텔이 권장하는 메모리를 개발하고 양산하면서 100% 만족하지 못했다.

 많은 반도체업체들이 동일한 제품을 대량 공급하면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유발시켰고 덕분에 D램에 손댄 업체들은 수차례의 대폭적인 가격 하락을 경험해야 했다.

 지난해 반도체업체들이 D램 가격의 하락으로 줄줄이 적자를 기록한 것도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메모리 사업에 손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반도체업계는 이번에도 인텔의 유도에 따라 DRD램에만 매달렸다가는 옛날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텔이 권하는 D램만으로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한 이들 업체는 이번 DRD램건을 계기로 제품 종류를 다양화해 사업체질의 개선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는 「PC133」규격의 싱크로너스 D램(SD램)이라든가 더블데이터레이트(DDR)모드로 작동하는 SD램 등 여러 가지 제품이 등장했다. 또 업체 중에는 NEC(버추얼 채널 SD램)나 후지쯔(패스트 사이클 램:FC램)처럼 독자적인 아키텍처를 채택한 메모리를 개발하는 곳도 있다.

 일본 반도체업체가 인텔이 권장하는 DRD램 이외에 여러 제품을 개발하게 된 데는 기술과 시장 등 두 가지 면에서의 이유 때문이다.

 기술면에서 보면 DRD램은 채택할 수 있는 제품이 한정돼 있다. 아직까지 생산 원가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DRD램은 같은 용량의 SD램에 비해 생산 원가가 높아 저가격 PC나 가정용 기기에는 채택하기 힘들다.

 또 수GB∼10GB 정도의 대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고성능 서버에도 적합하지 않다. 아직 DRD램은 하나의 채널에 칩을 32개밖에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 상태에서는 최대 용량인 144M비트급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최대 주기억용량은 1GB에도 못미치는 576MB밖에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반도체업체들은 PC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D램을 서버나 다른 전자기기에도 적용해 왔다. 하지만 DRD램은 이같은 등식이 성립되지 않아 PC 이외의 용도에는 별도의 메모리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PC시장이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점도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인텔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최근 들어 인텔 칩이 지배하고 있던 기업용 PC시장은 부진한 반면 인텔 호환칩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정용 저가격 PC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D램의 가장 큰 용도 중 하나가 PC인 만큼 반도체업체의 입장에서 이같은 시장 경향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인 것이다.

 특히 저가격 PC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인텔 호환칩업체들은 DRD램이 아닌 다른 종류의 메모리를 채택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한 예로 대만의 칩세트업체인 VIA테크놀로지의 경우 PC133규격의 SD램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VIA사가 이르면 2·4분기부터 칩세트를 출하하기 시작할 것으로 알려져 일본 반도체업계는 PC133용 D램사업에 욕심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미쓰비시·도시바·후지쯔·히타치·NEC 등 주요 업체들이 PC133용 SD램을 양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 역시 아무리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DRD램이 D램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때문에 반도체업체들이 DRD램의 개발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DRD램을 차세대 SD램으로서 낮은 가격대에 공급하기를 바라는 인텔과 달리 DRD램 사업을 부가가치가 높은 유망 사업으로 육성하려는 일본 반도체업계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