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련에 대한 혼자만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독수공방의 세월만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혼자 전전긍긍하던 세월이 안개 걷히듯이 걷히게 됐다. 무엇보다 그녀가 나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일은 한결 수월해졌다.
그녀를 향한 맹목적이면서 저돌적인 행동은 그녀를 움직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좀 모자라는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쪽에 대해서는 숙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숙맥처럼 행동한 저돌성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부대의 지휘관들이 부대 밖 외출이 잦은 것에 눈총을 주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주에 다시 외출을 시작했다. 그때는 통신반장의 사인이 들어 있는 연구하는 통신 매입차, 또는 관련 부품의 확인 등 일과 관련된 이유를 붙였다. 그러자 아무도 나의 외출을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임하사관과 문제의 여자 오빠가 되는 소대장 송재섭 소위는 나의 외출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송재섭 소위는 누이동생으로부터 보고를 받는지 내가 은행에 다녀오는 것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나는 저축한 돈을 찾기 시작했다. 오천원, 또는 만원을 찾았다가 그것을 다시 입금했다. 그렇게 한 주일이 지나고 나자 그짓을 반복하는 것도 계면쩍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돈을 찾았다 입금했다 한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를 챈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자 창피했다.
훗날 그녀와 친하게 된 이후에 그때의 감정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에 말을 안 하려고 하다가 털어놓았다.
『나를 보려고 은행에 와서 돈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예.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데이트를 하자고 정식으로 신청을 하문 시간을 내줄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지예. 오히려 내가 일요일에는 뭘 하지예 라고 물으며 암시를 줘도 그때는 책을 읽습니다 라고 대답할 뿐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지예. 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빠의 말을 들으면 비상한 머리를 가진 천재라고 하더예. 하긴,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 캤으니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토요일 잠깐 은행에 들러 돈을 오천원 찾으면서 입을 열었다.
『내일이 일요일이군요?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