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전산업 활성화 대책 급하다

 국내 가전산업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예년의 경우 2·4분기를 맞는 이맘때쯤이면 가전 3사마다 새해 사업계획에 따른 일련의 가시적인 조치가 잇따랐고 신제품 발표 또한 경쟁적으로 벌여왔지만 올해는 이같은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우리나라에 과연 가전업계가 존재하고 있느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동안 국내 전자산업을 주도한 가전업계의 움직임이 날로 위축되고 있다.

 물론 가전산업의 침체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90년대 후반 이후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종합전자 3사의 가전사업부문이 위기상황을 맞으면서 가전사업이 대표적인 한계사업으로 지목돼 왔다.

 이미 삼성전자가 가전업체가 아닌 반도체·정보통신 분야로의 변신을 추구하고 있으며 LG전자 또한 가전업체보다는 멀티미디어업체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가전분야에 매진해온 대우전자 역시 최근 빅딜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5대 가전업체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그 꿈을 접어야 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더해 올들어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가전사업부문은 수면 아래서만 움직이는 처지로 몰락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삼성전자로서는 이미 가전사업부문에 대해 상당부분 의욕을 상실한데다 자동차 빅딜의 혼란 속에서 가전사업부문에 대해 더욱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전부문 빅딜의 최대 수혜자로 보이는 LG전자도 대대적인 내수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사업부문의 매각 등 가전분야의 사업축소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채비율을 올해말까지 200%로 낮춰야 하는 등의 현안 때문에 정보가전 이외의 기존 가전분야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대우전자만이 최근 독자경영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동안 중단했던 광고나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지만 예전의 공격적인 모습과는 달리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 3사 모두에게 가전사업은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으려는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전자 3사의 위축상황은 가전산업의 매출규모가 13조원에 이르고 전체매출액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주도형 산업이자 생산·수출·고용 등 국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동안 국내 시장을 호시탐탐 노려왔던 일본 업체들이 오는 7월 수입선 다변화 조치의 완전 해제를 계기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 분명해 국내 가전산업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더구나 국민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해 있는 가전제품이 외산, 특히 일본산 제품에 의해 주도될 경우 관련산업이 입게 될 타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민에게 미치는 경제적·심리적인 파급영향은 다른 산업부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엄청나고 심각할 것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나 각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안방시장마저 내주고 기업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각별한 각오와 결의가 있어야 한다.

 가전산업이 한계산업이라고 하지만 대우전자의 경우 지난해 IMF의 위기 속에서도 전년대비 20% 이상의 높은 매출 신장세를 유지했고 가전제품의 수출에 있어서도 업체별로 20∼40%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는 가전업계 모두 국내 가전산업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외산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수익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상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동안 숱한 역경을 딛고 일본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가전생산국의 자리에 올라선 국내 가전산업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과 투자에 대한 보상은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국내 가전산업이 다시 한번 활기찬 모습을 보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