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에 내가 연구하는 통신 소프트웨어가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을 무렵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나는 그동안 연구한 무선 감지장치를 임의적으로 활용했다. 어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직 연구단계였기 때문에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구별해서 인식하고, 해당 주파수 파장만을 전송하는 인식 시스템 장치였다. 감청의 혼선을 막고, 구별해 선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달리 말해서 도청의 편의를 제공하는 장치였다. 기관에서는 도청을 감청이라고 표현했다. 도청이라고 하면 도둑질하는 의미가 포함돼 있으니까 피하고, 마치 감독한다는 식의 합법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감청반이 따로 있어서 모든 기술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를 감청하든 사무실을 감청하든 내부 감독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모든 부대와 기관장을 비롯해서 중요한 부서는 그것이 핫라인이라고 할지라도 감청이 되고 있었다. 우리가 코드 원, 또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대통령의 전화도 감청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청의 핵심은 북한이었다. 내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한 프로그램은 김일성과 그 휘하의 간부 목소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분류해서 정리하는 시스템도 있었다. 1호 행사(북한 김일성이 관련된 행사를 그렇게 불렀다)가 있을 때는 모든 시스템을 작동해서 감청이 된다.
나는 연구실에서, 감청해온 녹음이지만, 김일성이 휘하의 당간부들에게 말하는 목소리를 듣곤 했다. 그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독특함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입수된 첩보보고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한다고 했다.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가능하고 언뜻 들어서는 분간이 안되지만, 컴퓨터는 정확히 인식했다. 왜 대리 목소리를 만들어 놓는지 그 문제를 놓고 탐색을 했고, 그 무렵에 김일성의 신변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연유는 나로서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감청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주파수 인식 시스템이 가동이 되면 4㎞ 떨어져 있는 시장에서 A라는 사람이 지껄이는 말을 현장에 마이크가 없이 음파 레이더로 받아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직 그 음파만을 잡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걸러진다.
내가 송혜련을 대상으로 사용했던 음파 시스템 프로그램은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송혜련의 목소리를 컴퓨터에 인식시키고, 그 프로그램 주파수에 맞춰서 음파 레이더를 쐈다.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과 집을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