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성장가도를 질주해 오던 컴팩컴퓨터가 고비를 맞고 잇다. 수익률 하락과 함께 영업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에커드 파이퍼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물러나고 임시 경영진이 구성되는 등 혼란에 직면한 컴팩이 이 과도기를 어떻게 넘길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주 발표한 컴팩의 1·4분기 영업실적은 순익이 2억8100만달러(주당 16센트)로 당초 월가 분석가들 예상의 절반 수준. 매출도 이전 4·4분기의 108억달러에서 94억달러로 크게 떨어졌다. 이같은 결과는 이미 2주 전에 예견됐던 것으로 당시 뉴욕 증시는 1·4분기 순익이 예상치의 절반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컴팩의 경고가 있은 후 하이테크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컴팩의 임시 CEO를 맡고 있는 벤자민 로젠 회장도 영업실적에 대해 솔직히 실망스러우며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는 『(컴팩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를 합쳐 할 수 있었던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탠덤과 디지털이퀴프먼트의 합병 효과를 기대만큼 보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지난 83년 컴팩에 합류한 뒤 91년 CEO로 임명된 파이퍼는 한낱 PC업체였던 컴팩을 오늘날 세계 3위의 종합 IT업체로 키워 놓은 성장신화의 주역이다.
90년대 초 PC사업의 위기를 넘긴 그는 저가를 앞세운 공격적 마케팅 전략으로 94년 이후 컴팩을 세계 PC시장에서 부동의 1위 업체로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97년에는 탠덤을, 지난해에는 디지털이퀴프먼트를 인수해 컴팩이 골리앗으로 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공격적 경영이념은 회사 매출을 2000년까지 500억달러 규모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데서 잘 드러난다. 96년만 해도 그의 2000년 매출 목표액은 400억달러였으나 2년 뒤 100억달러가 더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컴팩의 행보에서 그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일차적으로 PC시장의 극심한 가격경쟁이 컴팩의 발목을 잡았다. 업체들의 끝간데 없는 가격경쟁은 수익률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으며 컴팩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파이퍼 회장도 수익률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가격전쟁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저가PC의 선구자였던 업체가 바로 이 저가경쟁 때문에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초부터 쌓이기 시작한 재고는 1년내내 걸림돌로 작용했다.
직판방식으로 PC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델컴퓨터도 컴팩에겐 여간 부담스런 상대가 아니다. 주문생산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컴팩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업체의 순익증가율은 지난 수년간 평균 50%를 넘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컴팩도 지난해 말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직판방식을 도입했지만 공급업체들의 반발로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매출부진과 관련한 정보를 투자자들에 공개하지 않아 집단소송을 당하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분석가들은 파이퍼 CEO가 저가PC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과 함께 탠덤 및 디지털과의 통합작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퇴진을 앞당긴 원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결국 파이퍼의 사임은 잘 나가던 CEO도 부진한 실적을 거두면 가차없이 책임을 물어야 하는 미국 기업의 전형적 사례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디지털 인수로 넘겨받은 서비스사업이 시장확대에 힘입어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분기에서도 서비스부문은 16억달러 매출로 목표치를 달성했다. 그리고 인터넷 관련사업도 웹서버 시장점유율이 44%로 늘어나는 등 계속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컴팩의 설명이다.
컴팩은 현재 새로운 CEO 후임자를 물색하는 한편 과도기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SGI의 CEO를 맡고 있는 리처드 벨루조 회장을 비롯해 아메리테크의 리처드 노트베르트 사장, 제너럴 일렉트릭의 차기 회장으로 꼽히고 있는 제임스 맥너니 정도가 후보자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IBM의 경영진인 톰 존슨과 샘 파미사노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석가들은 누가 파이퍼의 뒤를 잇든지 차기 CEO가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는 공급업체들과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복잡해진 공급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