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병장님, 목소리가 잡힙니다. 음파를 아날로그나 디지털화하지 않는 이상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잡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그 원칙을 깨는 일입니다. 장애물이 있는 데도 잡힌 건 획기적입니다.』
나는 연구실의 동료에게 자랑을 했다. 윤일구 병장은 제대를 하고, 우성호 상병이 병장이 돼 있고, 나는 상병이 됐다.
『그래?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벨 과학상 감이네.』
『들어보십시오. 목소리가 잡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볼륨을 확대해서 들었다. 송혜련의 목소리만 들렸다. 안녕히 가세요, 또는 어서오세요 하는 목소리와 도장은 가져 오셨나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잘 모르는 손님에게는 서울말을 사용했다. 경상도 어감이 들었으나,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은행 안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잡을 수는 없나?』
우 병장이 재미있다는 어투로 물었다.
『그렇게 되면 여러 개의 음파 주파수를 같이 사용해야 하는데, 서로 부딪쳐서 희석됩니다. 앞으로 개발할 수 있겠지요. 모든 소리를 다 잡을 수는 없지만, 선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건 대단한 개발인데?』
『이런 것은 감청에 국한시켜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통신체계에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전을 시키면 우리가 사용하는 전파를 이용한 소리의 전달을 넘어서는, 그 이전의 뇌파와 같은 개념이지요. 뇌파로 대화를 가졌던 초 원시시대로 소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네는 너무 환상을 갖는군. 어쨌든 감청기 없이 송혜련의 목소리를 잡았으니 대단한 일이야. 성공을 축하한다.』
우 병장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몹시 흥분했고, 나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 병장이 그 사실을 떠벌리고 다닌 데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감찰반에 불려갔다. 하나는 감독기관의 허락 없이 민간인을 감청했다는 사실과 또 다른 하나는 송혜련이 소대장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감찰반에 갔을 때 송재섭 소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담당 중위에게 전화를 했는지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다.
『연구한다고 해서 민간인을 함부로 감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홍 중위는 다른 부서에서 최근에 전임된 장교였는데, 나를 흘겨보면서 물었다. 작전에 나간 요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민간인의 감청을 밥먹듯이 하는데 나에게만은 큰 일을 저지른 것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