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서명법상의 공인 인증기관(CA) 문제를 둘러싸고 정보통신부와 타 부처 사이의 신경전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전자서명법이 부처간의 행정조율과 이를 통한 관련 제도의 정비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의견대립으로 제대로 정착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부처간 의견대립의 주된 이유는 전자서명법이 정통부 산하 한국정보보호센터를 국가 최상위 CA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향후 사이버 전자상거래(EC) 환경에서 정통부가 정점에 위치하고 인증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자치부·재정경제부 등 핵심 관련 부처들은 그 하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실정. 이는 실물 환경에서 국가 행정부문과 경제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두 부처가 사이버 공간에서는 정통부의 관리감독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자서명법 발효이후 온라인 전자문서가 종이문서와 동일한 법적효력을 지닌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부처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행정기관의 전자문서 등도 인증서비스를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행자부가 공인CA로 등록하게 되면 정보보호센터의 관리감독까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달부문 전자문서교환(EDI)서비스 인증사업을 준비중인 재경부측도 『비록 전자서명법상에 최상위CA는 공인CA 허가에서 관리감독권까지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부문은 예외로 둘 필요가 있다』며 정통부의 독주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통부는 타 부처들의 이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이미 전자서명법이 통과된 마당에 법을 준수해야 할 정부 부처가 공인CA라는 법적 자격을 완전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판단 때문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전자서명법이 국가 EC체계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애당초 철저한 준비를 통해 부처간 의견조율에 성의를 보였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이제 와서 전자서명법에 딴죽을 걸고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정통부와 타 부처간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자칫하면 전자서명법이 공공부문을 제외한 「반쪽짜리」법이 되거나 시행자체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전자서명법이 제정된 현재 관련 부처가 한발씩 양보해 합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부처간 자존심싸움에서 벗어나 시급히 의견조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