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업계의 쾌거로 기록됐던 현대정보기술의 베트남 중앙은행 지급결제시스템 구축사업 수주가 현지 조인식 직전 돌연 연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계약식에는 동남아 무역·산업협력사절단장으로 베트남을 방문중인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을 비롯, 조원일 주베트남대사, 베트남 중앙은행(SBV)의 구엔 반 지아우 부총재 등 양국 정부의 고위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는 이번 계약이 양국 정부차원의 「큰 사건」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인식 당일날 무기연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이례적」을 넘어 「황당한」 사태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사태발생 배경=베트남 정부는 이번 국제입찰에 참여했던 유니시스 등 해외업체들이 현대정보기술의 해외경험 등을 문제삼아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계약을 연기하게 됐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같은 명분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지적은 이미 수주전이 한창인 지난해말부터 제기됐던 루머(?)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보다는 베트남 특유의 비상식적인 고도의 가격깎기 전략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베트남 프로젝트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에서도 우선사업자로 선정된 후 무려 3개월이나 끌어 결국 가격을 10% 이상 깎은 후 조인식을 가진 적이 있고 또다른 프로젝트의 경우 기술점수 3위업체가 가격협상에서 이긴 적도 있다』고 밝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번 사건이 남긴 문제점=설사 베트남측의 준비된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현대측은 이번 행사에 우리정부 고위인사들이 참석하는 만큼 국가 위신이 실추될 만약의 경우에 대비,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베트남이 아직 개도국이자 사회주의 국가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해외업체의 이의 제기 내용 가운데 국내업체가 제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도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는 소문의 진위여부다. 이는 결국 국내 과당경쟁이 결국 해외에서 「나라망신」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망=아직 현대측의 프로젝트 수주가 무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통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가격협상을 통해 최종 계약식을 갖는 것이 상례이니만큼 우선권은 여전히 현대정보기술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가격. 현재 현대측이 제시한 가격은 1200만달러선. 이에 반해 유니시스의 가격은 1000만달러를 약간 넘는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현대측이 200만달러 가까이 내려줘야 한다는 결론인데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분석이다. 현재도 원가에 준하는 가격인데 이를 더이상 조정한다는 것은 아무리 향후 시장잠재력을 감안한다 해도 어렵다는 게 현대측의 입장이다.
가격협상에 실패할 경우 프로젝트 수주가 백지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최악의 경우다. 이럴 경우 베트남 정부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국내업체들의 영업관행 및 과당경쟁 실태는 업계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문제로 확대될 것임이 분명하다.
<김경묵기자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