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기습적 데이콤 지분 매입으로 촉발된 기간통신사업자 인수 경쟁에 주역으로 등장한 LG·삼성·데이콤·하나로통신 등 4개 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마치 전투상황을 연상시킬 만큼 급박하게 진행되는 이번 싸움은 서로의 지분관계가 얽히고 설킨 것만큼이나 복잡하게 전개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LG와 삼성은 독립변수, 데이콤과 하나로통신은 종속변수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사안별로 독립과 종속변수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기간통신사업자 경영권 인수는 이제 슈퍼컴퓨터로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고난도 방정식이 되고 있다.
가장 황당하고 초조한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반도체를 현대에 넘겨주는 대신 유·무선 종합통신사업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욕이 시작부터 위기를 만났다. 삼성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데이콤 지분제한 각서」가 족쇄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관계사를 통해 데이콤 지분을 추가로 사들인다는 해법을 내놓기도 하지만 정통부로부터 각서 해제판정도 받기 전에 일을 저질렀다가는 경영권은 고사하고 여론의 질타만 받을 것이 뻔해 엉거주춤하고 있다. 손발이 묶인 채 삼성의 질주를 바라만 보고 있고 최근에는 사업자 지분경쟁이 하나로통신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더욱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직도 대세는 LG에 있다」며 특유의 느긋함을 내보이고 있다.
전광석화 같은 기업 인수작전으로 통신시장 재편의 핵으로 떠올랐다. 대우중공업의 데이콤 지분을 인수, 20%대로 지분을 늘린 후 「LG견제용」이라는 분석에 대해 『삼성이 어떤 기업인데 지는 싸움에 뛰어들겠냐』며 경영권 장악에 자신감을 보였다. 삼성도 종합통신사업자로 변신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LG의 약점을 너무 이용한다」 「상도의상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 큰 부담. 또 굳이 데이콤을 인수해도 실익이 있겠느냐는 지적과 정작 정부나 LG로부터 무언가 반대급부를 바라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역풍에 해당한다. 동양그룹과의 제휴추진 상황이나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 및 증자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면 삼성의 진의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치 못한 삼성과 LG의 싸움으로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지만 직원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거냐며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재벌(LG)의 인수를 결사반대한다는 노동조합도 삼성의 움직임에는 아직까지 정리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시기에 줄 잘서자』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로통신의 최대주주로서 「합작투자계약서」와 정관개정 문제까지 등장, 자신들의 처지 돌보랴 하나로통신 챙기랴 정신이 없다.
데이콤이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통신시장 개편의 또다른 변수로 취급돼왔다. 당초에는 LG가 데이콤을 인수하면 LG와 여타주주들 간에 다시한번 인수경쟁이 불붙을 것으로 점쳐졌으나 삼성의 행보로 하나로 지분경쟁도 조만간 격화될 전망. 아직은 「일정기간 주식양도양수 금지」와 주요주주의 지분 양도시 양수 대상자를 엄격히 규정하는 「합작투자계약서」가 유효해 데이콤과 같은 실제적인 지분 이동이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이를 무효화할 경우 또 한차례 LG·삼성·현대·SK그룹의 지분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특히 7대 주요주주(5%이상) 가운데 데이콤과 삼성·SK그룹을 제외한 대우·현대(각 7%)는 지분 매각 가능성이 크고 한국전력과 두루넷(각 5.3%)은 이미 매각방침을 천명, 거래가 단숨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