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데스크톱 PC의 기억장치로 널리 채택되고 있는 3.5인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에서 3만5000엔 가량에 거래되던 13GB급 대용량 HDD가 최근에는 2만엔 정도면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폭락했다.
특히 미국 시게이트의 13.6GB급 제품인 「메달리스트 13640 ST313640A」는 지난 1월초 3만5000엔이던 가격이 최근에는 1만9800엔까지 하락했다.
또 IBM이나 맥스터의 동급 제품도 가격대가 2만엔 전후로, 10GB급 이하의 HDD와 가격차가 거의 없는 상태다.
미국 퀀텀이 지난 3월에 발표한 20GB급 제품은 미국에서 형성된 시장가격이 229달러(약 3만6000엔)였다.
이같은 가격하락 추세라면 20GB급 제품의 가격이 현재의 13GB급 제품 수준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과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HDD의 가격 폭락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처럼 HDD의 저가격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PC시장의 커다란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발점이 된 것은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1000달러 이하의 가정용 저가 PC의 등장이다.
미국 PC데이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판매된 PC의 60% 가량이 1000달러 이하의 저가 PC였고 600달러 이하 PC도 점유율이 20%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기존의 HDD 가격으로 이같은 초저가 PC를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저가격 전략을 전개하고 있는 HDD업체들이 노리는 시장은 PC분야 말고도 하나 더 있다.
가전제품에 HDD를 내장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은 가전업체들이 HDD를 TV프로그램의 녹화용으로 탑재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비디오테이프 대신 HDD에 각종 TV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을 녹화해 놓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재생할 수 있는 홈서버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벤처기업인 TiVo사가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협력해서 HDD내장 녹화기기를 시판했으며 일본의 주요 가전업체들도 홈서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PC보다 저렴한 가전제품에 HDD를 내장하기 위해서는 HDD의 생산원가를 더 낮춰야 하는 의무가 뒤따른다.
그런데 이같은 시장의 변화와 동시에 HDD의 저가격화를 가능케 한 결정적인 것은 지난해에 등장한 거대자기저항(GMR)헤드다.
HDD업체들은 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저가격화를 꾀하고 있다.
지금까지 HDD업체들은 그동안 축적해 온 기존의 기술력을 사용한 저가 헤드로 가격을 맞춰 왔으나 GMR헤드가 등장하면서 이같은 방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최첨단 부품을 사용하면서도 저가격화가 가능한 것은 HDD가 내장하고 있는 디스크의 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데스크톱 PC용 HDD는 최고 4장의 디스크를 내장하고 있다. 그런데 GMR헤드를 사용하면 이를 3장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GMR헤드를 사용하면 면기록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한 예로 퀀텀사의 20GB급 제품은 GMR헤드를 사용함으로써 지금까지 4장 가량 필요했던 디스크를 3장으로 줄였다. 디스크가 한 장 줄어들면 헤드 수도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원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HDD업체들이 지금까지 이같은 획기적인 기술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최첨단 헤드의 가격이 비싸 디스크의 수를 줄인 효과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GMR헤드의 바로 전 세대인 자기저항(MR)헤드는 데스크톱 PC용 HDD용으로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GMR헤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GMR헤드는 MR헤드와 같은 제조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어 생산원가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결과 기록밀도를 높여 디스크의 수를 줄이는 편이 기존의 헤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생산원가를 더 줄일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저가격화를 꾀할 수 있는 기술의 변화는 HDD업체들의 세력판도를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데스크톱 PC용 HDD를 생산하는 업체는 굳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저가제품 분야에서도 최첨단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업체가 시장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업체는 없을 것이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