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소프트웨어(SW)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정보기술(IT)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위치와 거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통신사업자들의 지분을 무차별 인수하면서 차세대 통신시장에서 또 한번의 「MS 신화」를 노리고 있다.
MS의 이러한 전략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윈도CE 운용체계(OS). MS는 지난 96년 윈도CE를 처음 선보인 이후 스리콤의 팜파일럿이 휩쓸고 있던 개인휴대단말기(PDA)시장의 구도를 「팜파일럿윈도CE」 양대구도로 바꿔놓은 데 이어 최근 팜파일럿과의 시장점유율 차이를 점차 좁혀가고 있다.
MS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윈도CE를 TV 및 통신 세트톱박스 시장공략용 무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공공연히 밝혀 왔으며 최근 이를 겨냥한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AT&T와의 제휴다.
인터넷시장에서 넷스케이프와 같은 신규업체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치욕을 맛봐야 했던 MS는 향후 고속 인터넷서비스가 일반화되면 세트톱박스를 이용한 인터넷접속이 주를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그 시장에서 일인자가 되기 위해 미국 최대 장거리통신 사업자이자 케이블TV 사업자인 AT&T와의 협력을 선택했다.
MS는 이를 위해 자사 역사상 최대 투자액수인 50억달러를 과감히 투자, AT&T의 지분 3.4%를 확보했다. 이는 기존 전화선에 비해 최고 300배 빠른 통신속도를 구현해 주는 케이블망이 향후 고속인터넷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TCI와 미디어원이라는 대형 케이블TV 사업자의 인수를 통해 2600만 이상 가정에 연결된 케이블망을 갖춘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 AT&T와의 제휴는 MS에도 거대한 신시장을 가져다줄 전망이다.
우선 AT&T는 향후 5, 6년간 500만대의 케이블TV용 세트톱박스에 윈도CE를 탑재하려던 계획을 750만∼100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AT&T가 향후 몇년간 도입하고자 하는 전체 세트톱박스의 40∼50%에 해당하는 수치로, 미국 전체 시장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미국 전체 세트톱박스 시장의 4분의 1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은 세트톱박스시장 석권을 노리는 MS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PC시장에서 이룩한 독점적인 지위를 가전시장까지 확장한다는 MS의 장기전략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경쟁제품인 자바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MS측은 기대하고 있다.
MS와 AT&T는 이외에도 MS의 이메일SW 및 인터액티브TV 서비스용 SW를 사용해 2000년 2·4분기까지 2개 도시에 인터액티브TV 시범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하는 등 제휴영역을 단말부문에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 자체로까지 넓힐 계획이다.
분석가들은 AT&T와의 거래가 당장에는 MS의 수익이나 주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큰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매출증가와도 직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제휴를 통해 MS가 PC시장에서 차지한 독점적 위치를 세트톱박스 부문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SW부문을 독점체제로 둬 얻을 게 없는 통신서비스업체들은 일찍이 여러 SW업체와 동시에 손을 잡는 경쟁체제를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 AT&T의 마이클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통신시장에서 어떠한 독점적인 시장상황도 만들지 않을 것이며 완전한 개방환경을 지향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어 MS의 세트톱박스시장 통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윈도CE가 과연 세트톱박스에 적합한 OS인가 하는 의문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윈도CE가 다른 세트톱박스용 OS에 비해 기술적으로 떨어져서 세트톱박스보다는 휴대단말기용 OS로 더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명령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기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세트톱박스를 끄지 않고 계속 켜놓아도 될 정도의 안정성을 갖추었는지도 의문이라는 것. MS 윈도의 주된 단점인 안정성 부족문제가 세트톱박스 부문에서도 그대로 일어날지 모른다고 분석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통신시장에 대한 MS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MS는 이미 지난 97년 미국 4위 케이블TV 사업자 컴캐스트사에 전체 지분 11.5%에 해당하는 10억달러를 투자한 바 있으며 2위 케이블TV 사업자인 타임워너와도 고속 인터넷 접속서비스업체인 로드러너에 공동투자하는 등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7위 케이블TV 사업자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는 MS 공동설립자인 폰 앨런이 지분 전체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MS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케이블TV 및 통신사업자의 지분을 추가 인수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리듬스 넷커넥션스, 노스포인트 커뮤니케이션스 등 디지털가입자회선(DSL) 서비스업체와 NTL, 텔레웨스트 커뮤니케이션스 등 영국 케이블TV 사업자에 대한 투자와 제휴도 통신시장에 대한 MS의 공격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MS의 문어발식 투자전략에 대해 일부 분석가들은 『누가 리더가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고속 인터넷시장에서 투자위험을 줄이고 확실한 위치를 구축해두기 위해 거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돈을 쏟아붓는 투자다양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MS가 컴퓨터시장에서 구축한 영향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세트톱박스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MS의 등장이 차세대 고속인터넷 및 광대역통신 시장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향후 몇 년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