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경제환경이 지난해에 비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비록 더디긴 하지만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과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을 꼽을 수 있다.
주식시세 급등은 실물경기가 뒷받침되지 않은 금융장세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지만 어차피 주가라는 것이 경제 전반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경기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같은 한국경제의 회복세는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해외자본 유치 열기를 식히기도 하고 기업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까지 외자 도입의 손익을 냉정히 따져보는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을 극복할 지고지선의 명제로 떠받들어졌던 외자 유치에 대해 지난해의 앞뒤 안가린 무분별한 외자 도입과 굴욕적 유치조건은 결국 경기가 회복되는 2∼3년 후엔 고스란히 해당기업과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정부의 외환유입 드라이브에 묻히고 말았다.
우리 역시 이 국난을 통해 당면과제인 외자 유치는 강력히 시행해야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한국경제의 부를 외국에 송두리째 내주는 외자 유치는 경계해야 하며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더욱이 기간통신사업자의 경우 국가신경망인 통신네트워크를 운용하는 공기업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외자를 들여오더라도 가격과 조건을 신중히 따져 후회하지 않을 협상조건을 마련하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했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외자 도입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당장 부도가 나거나 회사 간판을 내려야 할 만큼 긴박한 경영난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과당경쟁 후유증에 따라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부실해진 사업자도 있었다. 그렇지만 외자 유치에 목숨을 걸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좀더 좋은 가격과 조건을 따져가면서 해외 파트너를 고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외자 도입을 서두른 LG텔레콤과 한솔PCS의 경우 파트너의 기업 인지도나 국제 경영 노하우 부문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에게 팔았던 주당 가격은 너무 저평가됐다는 여론을 받았다. 한마디로 제값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1일 한국통신프리텔이 미국 투자전문회사인 캘러헌사와의 외자 유치 협상 중단을 전격 선언한 것은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지만 협상 중단의 책임이 상당 부분 캘러헌사에 있다는 점에서 분쟁소지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고 그보다는 기간통신사업자들의 외자 유치 과정에서 이제는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 외자 도입처들이 달러를 무기로 경영 전반에 걸쳐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거나 장기전략 수립에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듯한 협상자세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되고 국내 기업이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의 외자 유치는 기업경쟁력 향상이라는 궁극적 목표 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글로벌 시대에 해외 제휴처를 확보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여나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 지나치게 우리 스스로를 저평가하거나 비하하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적어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전화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적 기술 경쟁력과 운용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