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연도표기문제는 이제 더이상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 2000년(Y2K) 문제의 해결시한이 불과 7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를 둘러싼 법적 대응방안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주로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해 왔지만 앞으로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소송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응시기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데다 설사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해도 완전무결한 해결을 보장할 수 없는 Y2K 문제 특성상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Y2K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오는 2000년을 전후로 Y2K 관련 소송사태가 Y2K 문제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손해배상 청구금액과 변호사 비용을 포함해 전세계의 Y2K 소송관련 시장은 1조달러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아직 Y2K 문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제 소송이 발생할 경우 해결비용 부담이나 미해결시 책임문제와 손실부담에 대한 분쟁발생의 소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중에서도 Y2K 소송과 관련,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는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자나 공급자를 상대로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피해자라도 제조자를 상대로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프트웨어 사용허가 약정에 Y2K 문제 언급이 없거나 판매업자가 Y2K 문제는 소비자의 예정된 위험이라며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요구할 때도 소송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Y2K 문제해결 시간이 촉박해 컴퓨터 프로그램 복사본을 Y2K 해결 서비스업체에 제공하는 경우 소프트웨어 저작권 침해문제도 제기될 수 있는 등 Y2K를 둘러싼 법적 소송 지뢰들은 도처에 쌓여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같은 Y2K 문제 관련소송은 금융·의료·통신 등 전 산업부문에 걸친 다양한 분야에서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돼 이에 대한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 예로 Y2K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은행은 1992년 1월 10년 만기 적금통장을 개설한 고객이 2001년 1월 예금을 인출할 때 컴퓨터 연도인식 오류로 마이너스 98년 동안 예금한 것으로 계산돼 이자환산에 일대 혼란이 발생, 이에 대한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2001년에 태어난 사람이 신용불량자 가운데 1901년 출생한 사람과 생일이 동일할 경우 금융기관과 신용거래를 할 수 없게 돼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같은 피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선진국에서 이미 발생해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부근의 한 식품점은 금전등록기가 2000년에 기한이 만료되는 신용카드를 읽어내지 못하자 등록기를 생산한 제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미시간주의 한 농산물시장은 판매시점관리(POS) 등록기들이 물건값을 계산할 때 유효기간이 2000년 1월 1일을 넘는 신용카드를 인식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하자 이 시스템을 설치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Y2K 문제를 둘러싼 소송사건이 현실로 나타나자 Y2K 문제 전문 로펌회사들은 대부분 Y2K 문제와 관련된 소송사건을 2000년 1월 1일 이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미 소송대란의 서막이 올랐다」고 단언한다. 특히 이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할 경우 실제 Y2K로 인한 피해보다 소송과 이에 따른 법적 비용으로 파산하는 업체들도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해외업체에 비해 소송 등 법적 대응이 미숙한 국내업체의 경우 이럴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Y2K 소송은 Y2K 문제로 인해 야기된 손해발생과 그 해결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로 크게 구분된다. 또 성격상 개인뿐 아니라 집단소송의 가능성이 높아 파급효과도 그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Y2K 문제를 둘러싼 소송문제의 심각성이 가시화하자 세계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먼저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Y2K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입법 제정을 서둘렀다. 먼저 미국 상공회의소와 제조업협회 등 미국내 80개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최근 Y2K 문제와 관련해 벌어지는 소송에서 기업의 배상책임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이를 위해 손해배상금을 최대 25만달러나 손해액의 3배 이내로 제한하고 변호사 비용도 시간당 1000달러로 제한하는 원칙을 정했으나 로펌회사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Y2K 법적대응을 위해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가간에 발생할 수 있는 Y2K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국제협력 체제 결성도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의 잼스/엔디스퓨트, 영국 분쟁조정센터(CDR), 호주 분쟁해결대안기구(ADR), 싱가포르 중재센터(SMC), 홍콩 국제중재센터(IAC) 등 5개 법률단체들은 Y2K와 관련한 손해배상 등 민사분쟁이 수없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중재를 위한 국제적 조정기구 창설을 위해 막바지 작업중이다.
국내에서도 뒤늦게나마 정보통신부 주관 아래 Y2K 문제로 2000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 관련 법규의 제·개정 검토 등 법적 대응방안 마련을 준비중이다. 이와 관련, 한국전산원은 최근 한국법제연구원과 공동으로 「2000년 연도표기 문제 관련 법, 제도적 대응방안 연구」를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최근 들어선 이와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올해말까지 Y2K 문제가 100% 해결되지 못할 것에 대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비상조치계획과 Y2K 피해로 인한 소비자 보호를 도모하고 과도한 배상책임으로 관련기업의 도산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Y2K특별법(가칭)」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Y2K특별법에는 무엇보다 △사전적 해결 노력의무로서 정보공개의무(질의회신의무)와 인증의무를 부가하고 이같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기관(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등 가시적인 「당근」을 부여하는 것을 명문화하며 △현행법상 Y2K 하자의 존재 및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Y2K 하자의 존재 및 인과관계 입증책임, 보수의무의 귀속과 비용 부담자의 명확화, 그리고 과다비용 청구시 책임의 귀속 및 책임범위 등에 관한 규정을 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업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Y2K문제에 대한 법적대응을 사전문제와 사후문제로 나눠 기업 사활은 물론 국가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Y2K 소송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사전 대응방안으로 정보공개 및 확인의 의무화, 인증의 강제화, 하자담보 책임을 주축으로 하는 비용부담문제 처리, 과다한 비용부담 및 악의적 회피에 대한 대응,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부문에 대한 이용중지의 강제화 등이 집중 거론되고 있다. 또 사후 대응방안으로는 Y2K 관련 정보 공개 및 확인절차를 국가적으로 검증하는 장치를 마련해 그 검증을 통과한 주체에 한해 Y2K문제로 발생되는 손해에 국한해 배상책임을 지우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Y2K 소송대란은 분명 2000년을 맞기도 전에 Y2K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전위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김경묵기자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