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매년 발표해온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율 조사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BSA가 조사한 최근 3년 동안 한국의 SW 불법복제율 조사결과를 보면 평균 70%대로 아직도 후진국 대열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같은 조사가 과연 신뢰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는 BSA의 SW 불법복제율 조사가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기준으로 한 표본조사가 아니라 특정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회원사들이 제공하는 수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해당국가 PC의 판매량과 SW 수요예상치를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내 SW회사들의 자료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이런 방식의 조사는 객관적인 타당성에 흠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한국내 SW불법복제율에 대한 조사결과를 놓고 과연 이같은 방식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BSA측은 지난 97년 전반적인 산출방법을 공개했으나 구체적인 수리·통계적 방법은 전혀 발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신뢰성 확보에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지난 95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산하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SPC)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의 SW불법복제율이 50%로 나타났을 때 BSA의 조사에선 76%로 나타났고 97년 조사에서도 SPC의 조사에선 42%로 나타난 데 비해 BSA에선 67%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는데 이런 조사결과들이 조사방법의 차이 때문이 아닌지 더욱 궁금하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조사한 우리나라의 SW 불법복제율이 사실보다 꼭 높게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SW 불법복제 자체가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외신은 그동안 BSA의 보고서를 인용, SW 불법복제가 동남아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으며 SW 불법복제로 인한 이 지역 경제손실이 수억 달러에 달하는 한편 많은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가 있다.
동남아 각국들이 사상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SW유통의 건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바로 정품SW 구매를 통한 시장확대와 고용창출 효과 때문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잘못된 조사자료들로 인해 우리가 부당하게 겪어야 할 대내외적인 문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같은 조사자료들이 미국지적재산권협회(IIPA)를 통해 매년 미 무역대표부(USTR)의 스페셜 301조 지적재산권 관련 연례 국가평가 자료로 제출돼 한국을 감시대상국(WL)으로 묶어 놓도록 하는 등 대한 지재권협상이나 통상협상에서 압력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간 지재권협상에서 우리측이 수세에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IMF와 같은 상황에서는 외국투자를 결정짓는 국가신인도의 척도로도 사용되고 있어 그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SW산업을 미래전략산업으로 중점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불법복제 천국이라느니, 후진국의 탈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등의 불명예를 감수하는 일도 억울한 일이다. 불법복제 천국이라는 오명은 국내에서도 SW개발업체들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등 그 부작용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정부 관계자도 『BSA의 자료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SW불법복제율 조사결과라는 선입견 때문에 정부 차원의 검증은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고 있고 관계전문가들도 BSA의 조사방법이 모호하고 또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해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공감하는 만큼 차제에 이에 대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BSA의 조사자료가 신뢰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반박할 만한 신뢰성 있는 국내 자료가 없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다. 검증 안된 조사자료를 더 이상 맹신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루 빨리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