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기판과 같은 전자부품에서부터 워크스테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이테크제품을 전문생산하는 위탁업체들이 아웃소싱바람을 타고 급성장하고 있다.
SCI시스템스를 비롯, 솔렉트론·자빌 서킷 등이 이 분야의 대표주자로 비록 일반 유저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나 IBM·노키아·시스코시스템스 등 컴퓨터 및 통신분야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이들의 생산력을 빌리지 않고는 시장에서 이름값 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세계 각지에 거점을 갖추고 컴퓨터·주변기기·통신장비·가전·의료기기 등 하이테크산업 전분야에 걸쳐 필요한 부품과 완제품을 생산, 관련업체들에게 공급한다.
생산품목도 일반 전자부품에서 호출기·휴대전화·PC·워크스테이션·프린터·네트워크 스위치에 이르는 모든 제품을 망라하고 있다.
또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설계, 마케팅, 공급, 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솔루션까지 지원해 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고객기업들과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은 계약생산업체(Contract Manufacturer) 또는 위탁생산업체라고 불리며 전자생산서비스(EMS)업체라는 명칭이 붙기도 한다.
SCI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위탁제조업체는 생산을 외부에 맡기는 하이테크업계의 아웃소싱 추세에 힘입어 연평균 60%의 매출 증가율이라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세계 위탁생산 규모만도 1120억 달러를 형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미국 컨설팅업체 테크놀로지 포케스터스는 위탁생산시장이 당분간 25∼30%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오는 2001년에는 18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월가에서 이들의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한 주식지표에 의하면 이들 업체의 주가는 지난 1년새 110%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가들은 통신장비와 같은 유망업종에서 대형업체들의 경우 외부 위탁생산율이 아직 20%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은 더욱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또다른 컨설팅업체 로버트슨 스테펀은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나 노텔·에릭슨 등 유력 네트워크업체들의 장비 위탁생산이 향후 3∼5년 내에 30∼4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해 이같은 성장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PC에서 최근 휴대전화와 네트워크장비·통신장비 등으로 생산품목을 확대한 솔렉트론은 분석가들로부터 가장 유망한 업체로 주목받는다.
이 업체는 지난 몇달간 IBM·NCR 등 몇 개의 굵직한 하이테크업체들과 생산계약을 체결, 올 매출만 작년비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순익면에서도 향후 5년 동안 연평균 28% 성장률은 무난히 기록할 것이라는 게 월가 분석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시스코·스리콤 등 대형업체와 계약을 맺고 네트워킹 관련 품목을 전체의 45% 정도 생산하고 있는 자빌 서킷도 월가 분석가들에게는 잠재력이 큰 업체다. 이 업체 역시 향후 5년간의 연평균 순익 증가율이 26.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위탁생산업체들의 성장세는 급변하는 시장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웬 만한 하이테크업체들로서는 짧아지는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제품을 공급하고 또 이를 위해 비싼 생산설비를 도입하거나 교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수십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고 인력을 채용하는 것보단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것이 비용절감면에서 낫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장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효율적인 생산과 공급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업체들에게는 생산 아웃소싱은 더욱 유력한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 들어 위탁생산업체들은 계약업체의 주문에 따라 단순히 생산만 담당하던 과거의 역할에서 벗어나 신제품 설계단계에서부터 적극 참여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와 함께 자체적인 생산비용을 줄이고 수익성 제고를 위해 자사 고객업체들의 중고 생산설비를 되사들이는 것도 두드러진 추세다.
일례로 솔렉트론은 지난해 IBM·NCR·에릭슨·미쓰비시의 공장을 매입한 뒤 이들 설비를 이용해 다시 생산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중이다.
이같은 방법은 위탁생산업체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효과를 준다.
물론 이들도 PC와 같은 불확실한 시장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직접 소비자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를 담당하는 고객기업의 실적이 자사 매출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이들의 마케팅 및 공급전략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컴팩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SCI의 경우 올 초 PC시장에서 컴팩의 부진으로 매출 및 순익에서 적잖은 타격을 받은 것이 이같은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