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약 800만명의 이동통신 가입자가 사용하고 있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은 미국의 퀄컴이라는 벤처기업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다. 모토롤러를 비롯한 세계굴지의 통신업체들이 외면한 이 기술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지난 96년 상용화에 성공했는데 우리나라는 이 상용화 기술개발로 매년 13조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98년의 경우 약 6억5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또한 축적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통신망 구축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편 미국 퀄컴사는 지난 1년 동안 약 1000억원의 로열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수년 안에 전세계적으로 CDMA방식 가입자 수가 유럽식 시분할방식(TDMA·GSM)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돼 하나의 원천기술 특허권이 갖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과학기술 독점과 경쟁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고유의 첨단 과학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이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국가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범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주로 논문의 수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지만 경영성과와 연구자의 평가에 산업재산권 출원 및 등록실적을 연계함으로써 산업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개선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우수한 연구인력에 의해 창출된 결과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거나 보호받지 못함으로써 연구결과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의 연구의욕이 저하되고 있으며 개발된 과학기술물의 산업화가 지연되거나 사장될 우려가 크다.
최근 한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개발된 과학기술이 산업에 연계되는 경우가 76%인 반면 우리는 48%에 그치고 있다. 기술선진국의 경우 국가와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연구자가 수행한 과제에서 특허와 기술료가 발생한 경우 특허는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 기술료는 연구수행자 중심으로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우 기술료 수입의 70%를 연구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있다.
특허청이 특허행정 전산화 7개년계획 등을 통해 여러 제도개선을 이루어 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특허정보 검색, 특허절차의 단순화와 특허출원 및 유지비용의 절감대책은 계속 강구해 나가야 한다.
지적재산권 분야의 우수한 전문인력 확보도 중요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경우 별도로 특허 및 기술이전 부서와 26명의 전담인원을 두고 있으며, 일본의 주요 기업체는 특허업무에 수백명이 일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10만여 제조업체 중 1% 미만이 특허관리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지적재산권 및 국제 특허분쟁 발생시 인력부족으로 적절한 대응을 못해 큰 손해를 입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동영상 처리기술에 관한 특허 하나로 연간 1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경우도 있지만 90년대 들어 국내 업계가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외국 업체로부터 받은 경고와 제소건수가 400여건에 이르며 외국으로 지불되는 로열티는 국내 전체 연구개발비의 17∼18%에 상당하는 약 2조원에 이른다.
21세기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산업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하여 질 높은 특허출원을 유도하여야 한다. 특허 등 산업재산권 제도를 개선하여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개발 성과를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특허권리화하여 기술이전을 통해 산업화로 연결시켜야 한다.
기초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지적 창작활동을 중요시해 온 미국이 지난 10년간 연구개발 성과로 99만건의 내국인 특허출원과 약 160조원의 기술무역 흑자를 달성했다.
반면 「개량중심」의 기술개발과 그 성과의 보호를 기본으로 한 일본은 미국에 비해 4배 이상의 특허출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40조원의 기술무역 적자를 보고 있음은 우리에게 또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덕린 한국과학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