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Biz포럼> 창설기념 이어령 교수 강연

 인터넷을 단순히 정보체득을 위한 사이버공간으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은 이제 문화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미국 경제를 디지털경제라는 말로 표현하듯 이미 인터넷은 경제의 「뉴 패러다임」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인터넷의 종주국인 미국도 현재 인터넷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사고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내에서 인터넷 관련산업으로 파급되는 경제효과는 미국 경제의 10%를 차지한다. 적지않은 비율이다. 그러나 미국 주식시장에서 인터넷의 파급효과는 10%를 무색케 한다. 인터넷 주가는 미국 나스닥을 휘어잡을 만큼 폭발적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고 미국 「다우존스」 지수를 1만 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인터넷을 통한 비즈니스는 기존 사고의 틀을 과감히 깨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다. 미국이 인터넷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게 된 것도 그들의 문화적 사고와 무관치 않다. 인터넷을 비즈니스와 연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미국의 문화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인터넷은 수직적 사고와 제도를 수평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폐쇄적 문화를 개방적 문화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집중적 사회구조를 분산적 사회구조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구조를 미국은 문화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 비즈니스가 거부감없이 수용되고 있다. 이 결과 미국은 디지털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결코 미국의 인터넷 경제는 거품이 아니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는 상반된 문화구조를 갖고 있다. 이 결과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지난 몇년동안 3위에서 13위로 밀려났다. 일본 사회구조가 수직적이며 폐쇄성이 짙고 집중적 사회구조에만 집착한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으로 유명한 「아마존」은 이같은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인터넷 비즈니스의 좋은 모델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서점은 경영난을 대표하는 업종이다. 그러나 서점이 인터넷 비즈니스와 접목되면서 이제 잘되는 사업으로 변모했다.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잘되는 사업으로 평가되면서 일반 서점도 호황을 누리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서점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일반서점과 경쟁관계를 생각한다. 기존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앞서 인터넷의 역기능을 우려한다.

 사고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제도의 정립이 필요하다. 영화산업의 요람이라고 하는 「할리우드」는 자유로운 발상과 규제의 철폐에 따른 결과다. 미국 동부에서 시작된 영화산업은 철저한 규제로 인해 발전에 발이 묶였다. 결국 자유롭고 규제가 덜한 서부를 찾아 영화인들이 옮겨갔고 할리우드는 전세계 영화산업의 메카로 자리하게 됐다.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경우는 더하다. 자동차를 개발한 독일은 개발초기 속도 제한을 두었다.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게 규제를 가했다.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제도로 철저히 묶어놓았다. 그 결과 자유로운 자동차 운행을 위해 자동차 개발자들은 프랑스로 옮겨갔고 현재 전세계 유명 카레이스 대회의 대부분을 프랑스가 개최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은 사고의 전환을 원한다. 개발이 모든 것을 안겨다 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기본적인 인식의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한다. 미국이 인터넷의 메카로 자리하게 된 것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컴맹률의 덕이다.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문화탓이다. 또 영어가 사이버공간의 언어로 정착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계 미국인인 16세 소녀가수의 음반이 60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소녀가수의 음반은 기존 매스미디어나 콘서트를 통하지 않고 판매됐다.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판매된 양이다. 이제 인터넷 비즈니스는 단순한 상거래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대화하는 문화적 공간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일방적으로 판매하는 방식의 시대는 끝났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새로운 판매방식이다. 따라서 인터넷은 서비스가 아니라 협력이다. 그리고 곧 문화다. 그것은 또 상생의 성격을 띨 것이 분명하다.

<정리=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