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NEC, D램 대규모 증산 배경과 의미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 업체인 NEC가 한국과 미국 업체에 빼앗긴 D램 시장에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내년 여름까지 400억엔의 거금을 투입해 D램의 생산량을 현재의 2.5배인 월 3000만개 규모(64MD램 환산)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대부분의 일본 업체들이 시장 부진을 이유로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가운데 NEC가 D램 증산에 나선 배경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업계의 재편과 소수 상위업체에 의한 시장의 과점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짙게 깔리고 있다. 또한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과 미국 업체에 내준 「세계 제일의 D램 왕국」 타이틀을 되찾기 위한 노림수도 내포돼 있다.

 자칫 손을 놓고 있다가는 일본 최대의 D램 업체인 NEC조차도 D램 시장의 톱클라스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확대를 통한 물량공세로 승부수를 던지게 된 것이다.

 D램은 80년대 이후 줄곧 일본 반도체 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 돼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업계의 잇따른 인수·합병을 비롯한 급격한 시장환경의 변화로 D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본 업체는 상위 한두 업체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3, 4월에는 주력제품인 64MD램의 가격이 스폿시장(소량구매시장)에서 6달러대까지 진입했고 최근에는 5달러, 심지어는 4달러 후반에도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 연말에 7∼8달러선의 가격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일본 업체들의 당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의 주요 반도체 업체 5개사는 최근 3년새 D램사업에서 1조엔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D램 가격이 4∼5달러대로 떨어지게 되면 일본 주요 반도체 업체의 평균 생산규모(64MD램 환산으로 월 1000만∼2000만개)로는 원가절감을 하는데도 한계에 봉착하게 돼 또다시 거액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것이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등 일본 업체의 반도체 투자 여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반도체 업계가 미국이나 유럽 업체에 비해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MPU) 등 유망 분야에 투자를 활발하게 전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반해 세계 최대의 D램 업체인 한국의 삼성전자나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주요 반도체 업체는 규모의 이점을 무기로 D램 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D램 생산량을 월 4000만개 규모로 확대했고 현대전자와 LG반도체도 반도체 부문의 합병으로 경영기반을 견고하게 다지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D램 사업부를 인수한 마이크론도 올해 말까지 D램 생산량을 5000만∼6000만개 규모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처럼 상위업체들이 줄이어 D램 생산량을 확대함에 따라 미국의 한 시장조사 업체는 『올해에는 이들 빅3가 세계 D램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세계 D램 시장에서 4위인 동시에 일본 최대의 D램 생산업체인 NEC는 PC업체 등 대량구매 고객의 주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월 3000만개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D램 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되는 등 주변환경은 악화되고 있지만 생산량 확대를 통해 원가절감 효과를 보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시장의 주력제품인 64MD램과 차기 제품인 128MD램 시장에서 적정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실패하면 오는 2001년경 보급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256MD램의 출시에도 문제가 발생해 D램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전반에 걸쳐 설비투자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 「D램왕국」의 재건을 위한 투자 재개의 갈림길에 서 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