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80)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자기 합리화에 몰두한 인상입니다. 분명한 것은 당신이 설사 없었다고 해도, 말하자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나는 이곳에서 불건전한 사교를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나름의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신을 사랑하면서 백인 여자를 사귈 수는 없습니다. 교민 여성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당신이 사귀라고 한 것은 건전한 교제를 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이성 교제를 건전하게 영위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그럴 것인데, 이곳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귀다 보면 호감이 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앞에서 말한 일본 청년처럼 외로움에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 역시 고국에 사랑하는 애인과 별개의 존재로 여자를 사귀면서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실제 데이트를 할 만큼 한가하지 못합니다. 방학이라고 할 경우는 강의 듣는 시간이 없다는 뜻이지, 개인 연구는 계속해야 했습니다. 더러는 연구실에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답니다.

 이곳에는 내가 서울의 광화문에서 그렇게 사고 싶어했던 미국의 컴퓨터 원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어떤 서적이든지 출간되는 즉시 비치가 되기 때문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고, 실습시간 이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탐독하는 시간으로 할애하게 됩니다. 어느 때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책을 들고 읽으면서 식사를 하는데, 그것은 건강에 매우 안좋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 좋지 않은지 이유는 설명듣지 못했습니다만.

 밤이 깊어가면서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미시간호 건너편 대학가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의 일부는 밤을 지새면서 불빛이 빛납니다. 방학이 되면 대학생들은 마음껏 휴식을 즐깁니다. 어떻게 보면 놀러만 다니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생일부는 방학이 따로 없이 밤을 새우면서 공부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공룡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하며 압도합니다. 내가 이곳에 온 지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최선을 다하여 일하고, 최고의 휴식을 취하며 즐기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마음껏 즐긴다는 원칙은 참으로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