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술동향> "바이오 컴퓨터" 연구 활기

몇 년 전 일본 미쓰비시전기는 단 한 개의 합성 단백질 분자로 반도체 소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분자소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분자소자는 극히 미세한 분자가 소자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존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 고집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됐다.

 당시 분자소자는 구체적인 집적화 기술이 뒷받침될 경우 10조비트급 용량의 메모리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쓰비시전기는 생물 세포 내의 단백질이 전자를 주고 받으면서 정보를 전달, 생명 기능을 유지하는 사실로부터 힌트를 얻어 분자소자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후 분자소자를 이용한 반도체 개발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생물학적 연구 성과를 전자공학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특히 생물학과 컴퓨터공학의 결합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명석한 두뇌의 「바이오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는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미물에 불과한 곤충의 몸짓에서도 바이오 컴퓨터 개발에 필요한 수많은 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다.

 미국 오리건대학 신경과학연구소의 숀 로커리 박사팀이 제작한 소형 모조 손수레는 미래의 바이오 컴퓨터 연구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되고 있다.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져 대수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손수레는 한짐의 전자부품을 싣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손수레는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충류에 속하는 회충의 신경체계가 프로그래밍돼 있어 그것이 「사고」하고 「행동」하듯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만 회충이 화학물질에 반응하는 것과 달리 이 손수레는 앞면 윗부분에 장착된 광전지가 빛에 반응해 길을 찾아가도록 돼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로커리 박사팀이 하필 회충의 신경체계를 프로그래밍한 것은 인간의 경우 신경 단위인 뉴런을 1조개 가량 갖고 있는 데 비해 회충은 302개만을 갖고 있는 단순 신경체계이어서 과학자들이 이미 상세하게 그것의 뇌활동 원리를 파악해 놓았기 때문이다.

 로커리 박사팀의 손수레는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제작된 로봇벌레를 뜻하는 「바이오봇(biobot)」으로서 먹이를 찾는 헤매는 작은 벌레와 같은 정확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바이오봇은 바이오 컴퓨터의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물체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원리를 컴퓨터에 적용한 바이오 컴퓨터의 궁극적 개발목표는 인간이나 고등동물이 정보를 처리하고 이용하는 과정을 재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같은 목표가 실현된 미래의 바이오 컴퓨터는 오늘날의 슈퍼컴을 아이들 장난감으로 만들어버릴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컴퓨터는 수학적 계산이나 명령어 실행은 능숙하게 해내지만 생물체가 행하는 연상이나 합리적 결정 혹은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면에선 거의 맹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오 컴퓨터는 이 모든 활동을 아주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인간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몇 년 후의 일기 예보를 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물론 유기체의 신경활동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코드화함으로써 일종의 전자두뇌를 만드는 험난한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생물체의 사고와 활동원리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커리 박사는 이에 대해 『우리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지금과 완전히 다른 컴퓨터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물들이 깨우쳐주고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과 컴퓨터공학의 결합을 통한 바이오 컴퓨터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학문적 관심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소프트웨어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이같은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의 연구진은 워싱턴대학의 연구팀과 수시로 만나 생물과 컴퓨터의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엔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토론을 근거로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분야를 정하기 위한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MS는 새에 대한 연구가 항공역학의 원리를 깨닫게 하고 결국 비행기의 출현을 가져왔듯이 자사와 워싱턴대학의 공동연구가 미래 바이오 컴퓨터 혁명의 출발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것을 위한 핵심과제는 생물체에서 나타나는 전기신호체계의 비밀을 해독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온/오프라는 단순한 전기신호를 사용하지만 생물체의 두뇌는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구도 생물체가 사용하는 신호체계의 비밀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생명체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는 DNA의 특성을 컴퓨터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다.

 즉 온/오프 신호가 아닌 DNA의 염기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자가 달라지는 원리를 응용한 컴퓨터를 개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단 하나만으로도 오늘날의 모든 컴퓨터를 연결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 이상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DNA 컴퓨터는 그러나 아직은 이론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