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봄은 지금 슬프고 잔인한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 만난 헤밍웨이에게 당신들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방관을 하고 있느냐, 한국 군부에 협력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어떤 조치를 강구중에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미소만을 지었습니다. 그 미소는 음모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이상 협력을 하고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항상 내세우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라는 낱말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고, 모른 척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우방이라는 틀 속에서 그들의 시장경제에 들어가 있는 한 개의 조그만 장터에 불과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실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읽은 듯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당신의 나라에 내정간섭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지요. 쿠데타가 일어나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으며, 양민이 학살되거나 야당 정치인이 체포되어 제거된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간섭할 명분이 없습니다.』
『어떻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당신의 나라에서는 우리가 미사일을 만드는 것도 막았고, 국방장관이 입각할 때는 항상 간섭을 했고, 여단급 이상 부대가 이동을 하면 한미 합동 총사령관의 재가를 얻어야 하며, 쿠데타라고 할지라도 주동 인물이 공산진영의 좌익계라는 판단이 나면 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정간섭이 없다고 합니까?』
『그건 내정간섭이 아니고 태평양 방위조약에 따른 국제안보지요. 그것은 당신의 나라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미국과 세계평화에 대한 원칙이지요.』
『세계평화의 원칙이라고 하지만, 그 말처럼 허울좋은 핑계는 없습니다.』
헤밍웨이는 더 이상 말이 없이 허허 하고 웃었습니다. 나의 조국 미래가 걱정이 됩니다. 별로 힘도 없고 보잘것없는 내가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암담한 현실에 삶에 대한 의욕마저 떨어지고 있습니다.
5월 25일
워싱턴 교외의 어느 산장에서 최영준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