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과거에 컴퓨터 사용이 혁명적으로 쉬워졌다고 세상이 시끄럽던 때에 「베이식」 언어로 밤을 새워가며 프로그램을 짜던 기억과,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선착순 집합」에서 열심히 뛰다가 갑자기 「뒤로 선착순 집합」 명령이 떨어질 때 느끼던 배신감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선착순」과 「뒤로 선착순」 훈련은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군대에서 상황변화에 잘 적응해야 하고, 혼자가 아니라 주위의 전우들과 보조를 맞추는 습관을 길러주는 훈련으로 이해하면 좋은 인생교훈이다.
과거에 밤새워 연습하며 단련했던 기술이나 사고는 이제 굳어버려 새로운 기술이나 사고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PC세대라 해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에서 인터넷세대에 뒤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절정을 이루면서 관료와 군대 그리고 산업조직이 거대하게 커지더니 경직된 사회주의는 몰락하고 자본주의 국가들도 인터넷처럼 유연해지려는 구조조정에 아픔을 겪고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발상이 떠오르고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가 있으면 어디서나 글을 써서 전자우편 주소로 보내거나 집에 돌아와 정리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막내와 인터넷을 통하여 학문적인 토론도 하고, 막내가 학교에 제출하는 리포트를 서울 집에서 보고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를 파악하기도 한다.
세계무역센터협의회(WTCA)에서는 전자무역의 강력한 도구로 신용카드 제도를 도입하여 보편적인 무역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무역은 물론 사상교환까지 자유롭게 된다고 한다.
지난 90년 통신장비의 수출을 위하여 루마니아로 출장갔을 때 겪은 일이다. 사람들은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축출되고 보니 루마니아의 국제전화 회선이 전체 6회선뿐이었고 그나마 그가 모두 독점하고 있었다 해서 어이없어했다.
소수 엘리트 관료들의 단견과 아집이 자생적 질서를 무시하고 「합리적 계획과 통제」라는 명분을 앞세워 오류투성이의 인위적 질서를 강요하던 사회주의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폭정이 되고 파멸되었다.
과거 전임 경제부총리가 우리나라의 재정은 건전하다고 했지만 IMF체제를 맞으면서 그러면 왜 IMF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요즘 발표를 보면 97년 말 현재 국채발행액이 28조원으로 GDP의 6.8%에 불과했는데 이는 미국의 69.7%나 일본의 49.7%에 비하면 건전재정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과 고용창출 등으로 정부는 지난해 22조원을, 그리고 금년에는 29조원의 국채를 발행하여 상환액을 제외하고 올해 말 국채잔액은 총 약 6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실력이 있으면서도 이유가 정치적이었건 이념적이었던 간에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탓으로 IMF의 충격을 겪어야 했다는 결론이다. 능력이 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우편과 상거래 등 인터넷을 중심으로 개인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10분이면 배우고 활용하면서 자동으로 숙달되는 인터넷을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영향력이 큰 기업이나 조직의 경영자들이 세상변화에 무딘, 과거식 의사결정을 태연히 하는 광경을 보면 그들의 용감성(?)에 겁이 난다.
정부가 열심히 추진하는 정책인 「사이버 코리아 21」도 국민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시간과 물자를 절약하고 지식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국민은 교육수준이 높아서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인터넷을 통하여 지식사회를 만들어 선진사회로 가자는 구호가 설득력을 갖는다. 능력이 있다고 자만해서는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능력은 발휘되어야 진정한 능력이다.
<정장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