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해도 당신이 그립고,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풍경이 아름다워도 당신이 그리워지고, 아름다운 이국의 여인들을 보게 되어도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대관절 왜 그런지 나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이유를 알려고 할 필요는 없겠지요.
8월 2일
플로리다의 해변에서 최영준으로부터
미시간호 남단에 버드나무 숲이 있습니다. 가을이 되자 이 버드나무 숲은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것같이 변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노란 버드나무 잎은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였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물결처럼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 아래를 걸어가면 나뭇잎이 무릎까지 파묻히기도 하고, 발목에 휘감기면서 너풀너풀 날았습니다. 그 낙엽과 단풍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어느 때는 몇 마리가 날아오르기도 하고, 또는 일시에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납니다. 그렇게 많은 새들이 날 때는 그 날갯짓 때문에 다시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새들과 어우러져 어느 것이 새고 낙엽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이 없는 때도 낙엽은 물방울 떨어지듯이 뚝뚝 떨어져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팔랑거리면서 납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지면서 파도가 되는 것입니다. 가을과 버드나무와 낙엽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그 옆에 파랗게 넘실대는 호수는 노란 버드나무 숲을 비추어서 캔버스의 수채화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노랑 물감을 즐겨 사용하는 화가가 그린 수채화 말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 이따금 연인들이 허리를 끼고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그들은 낙엽을 밟으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깔깔거리고 웃기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문뜩 당신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펴서 당신과 함께 그 숲을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지난날 인천 월미도에서 걸었듯이 우리는 별로 말을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그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 제럴드와 함께 시카고 교외에 있는 자동차 경기장에 갔습니다. 자동차 경기는 생명을 내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은 차를 운전하든 지켜보든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경기 중에 돈을 걸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경마와 비슷했는데, 나는 세 번에 걸쳐 10달러를 걸어서 몽땅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