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아예 해외 특정회사 제품으로 입찰서류를 제출하라고 못박았습니다. 물론 백본장비야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지 못하니까 그렇다쳐도 워크그룹용 장비는 국산제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최근 D대학의 학내 전산망 구축 관련 입찰작업을 진행한 한 국내업체의 영업 담당자 얘기다. 결국 이 영업 담당자는 우기다시피해서 전체 스위치 허브 소요량 중 일부를 자사 제품으로 납품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또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학내망 사업과 관련해서도 일부 교육청들이 국산제품을 배제하는 특정 사양을 제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국내 네트워크 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국내에서 국산 네트워크 장비의 시장 점유율이 두자릿수를 넘어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올해 국내 네트워크 장비 시장규모는 2500억∼3000억원.
국산장비는 이러한 시장에서 10%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업계에서는 전산담당자들의 편견이 이러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산제품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국산이 그렇지」하면서 자조한다. 그러나 해외제품이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뭘 잘못 조작했나」하고 자신부터 의심한다』고 편견에 대한 일례를 소개했다.
해외업체와 국내업체의 마케팅능력 차이도 한몫을 하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업체의 경우 제품을 구매할 경우 자사 공장 견학이나 해외 세미나 초청 등의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기껏해야 국내 공장견학이나 제주도에서 여는 세미나가 고작』이라며 이러한 것도 무시못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해외 장비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전산담당자가 위험성과 조작을 다시 배우는 수고를 무릅쓰고 굳이 국산장비를 구매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도 국내업체들이 고전하는 이유.
그러나 업계 일부에서는 이러한 남탓 외에 국내 대기업들의 영업행태가 빚어낸 「자승자박」이라는 의견도 제시한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기보다는 해외벤더의 제품을 공급받아 이를 구축하는 네트워크 통합에 주력해왔다. 이러한 사업형태는 덩치를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개발쪽은 사장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한국통신이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라우터 경진대회를 열어 화제가 됐다. 라우터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업체인 시스코사의 전유물로 노텔네트웍스나 스리콤 등 해외경쟁업체마저도 맥을 못추는 분야다. 그러나 리모트 라우터분야에서는 한아시스템이 이러한 세계적인 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또 다른 벤처업체인 미디어링크는 최근 제주도청에 자사 스위치를 납품했다. 이 스위치는 워크그룹뿐 아니라 신뢰성이 기본인 백본에도 사용된다.
국내업체 관계자는 『무조건 국내업체 제품을 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직 기술력에서 선진업체에 못따라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소호시장이나 학내망에는 가격대비 성능에서 국산제품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벤치마킹 테스트 기회라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