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품산업 구조조정 이제 시작이다

 국내 부품산업의 체질이 약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로 악화된 환경에 시달려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적지 않은 업체들이 지난해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부도로 쓰러졌다.

 살아남은 기업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IMF체제에서 생존에 급급해 종전까지 습득해온 범용기술과 생산설비를 이용, 수익 극대화에만 매달렸다.

 이러한 업체들의 특징은 장래를 대비하지 않았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나 설비 투자가 거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전자산업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미래가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IMF체제를 견디면서 얻은 것도 적지 않다.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것과 같은 내핍을 통해 강인한 생존능력을 배양하기도 했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중복·과잉 조직을 정리, 고비용·저효율 체제를 개선했다. 그래서 일부 업체들은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오히려 강화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업체들의 경쟁력은 IMF 이전보다 강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자부품은 전자제품의 성능을 좌우하고 생산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부품산업이 취약해진다는 것은 곧 전자산업이 허약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부품산업이 더 이상 약골이 되기 전에 우리는 긴급히 수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전자부품산업 발전방안」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전방안은 진흥회가 전자부품산업의 중요성을 인식, 수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분야별로 우리의 취약점을 제시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재료산업 국산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으며 고정밀 부품 개발의 필요성, 유망부품 발굴, 공정기술 개발의 당위성 등을 짚었다.

 아울러 첨단 부품 개발을 위해 업계 자체의 노력과 함께 전자부품 발전 중단기 대책을 수립하고 고정밀 부품 개발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할 것, 부품·소재 개발에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할 것 등 정부의 지원도 촉구했다.

 이같은 내용은 모두 업계가 필요한 것으로 정부가 능히 정책으로 삼을 만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자부품산업은 이에 앞서 업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우선 기업 규모에 따른 사업품목별 역할분담이 있어야 하겠다. 산의 높이에 따라 극상을 이루는 수종이 달라지듯 기업의 크기에 따라서 적합한 사업품목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부품산업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한데 어우러져 거의 같은 품목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게 그러한 사업에서 손을 떼라 하고 대기업은 경쟁력이 있으니까 사업을 영위하는 것 아니냐며 항변한다. 또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계열사의 수요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어 종합 부품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다.

 어쨌든 이러한 우리의 산업구조는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고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당당히 경쟁해 품질 및 가격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체질을 갖춰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대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를 요하고 위험성이 큰 소재나 재료 분야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기업의 특정 품목에 대한 진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업계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대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기존 부품산업 분야에서 손을 떼고 소재나 재료 분야에 진출할 경우 제도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촉매가 될 것이다.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품이나 재료·소재 개발을 지원할 경우 투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때 그때 업계의 필요성에 따라 지원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부품산업 기술 추세를 파악해 산업을 육성해야겠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국내 부품산업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