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시오. 반년 같이 있으면서 보니까 당신은 그 점을 가지고 있어.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해야 한다고 사장에게 직언한 사람이 당신이고, 기술자들을 판매 일선에 내보내는 것을 항의한 사람도 당신이오. 당신은 리더로서 자질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밑에서 더 배우고 떠나야 하는데….』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해야 한다고 당신이 주장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면서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최영준씨의 말을 듣고 보니 앞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나가서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할 거요?』
『저에게 가장 큰 취약점이 창업자금이 없다는 점입니다.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이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실리콘밸리 분야의 벤처창업에 자금을 대주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지요. 정부에서 하는 일이란 요식행위에 불과해. 교육용 컴퓨터 개발도 요식행위야.』
노 과장이 요식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부분의 아웃사이더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정부에서는 83년을 기해서 「정보산업의 해」를 선포하고 정보통신 육성과 컴퓨터 산업에 신경을 쏟았으나 그것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다. 81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파급효과를 노리려고 하던 차에 컴퓨터 산업이 거론되었다. 컴퓨터 산업은 당연히 정보통신체제의 변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정보통신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더욱 많은 컴퓨터 보급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려면 경제적인 성장도 있어야 하지만 컴퓨터 전문 요원의 배출도 중요했다. 그 방법은 많은 컴퓨터를 보급하는 일이고, 그렇게 하려면 비싼 돈을 주고 외국 것을 사오는 것보다 국산품을 만들어 싸게 공급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교육용 컴퓨터 5천대 보급계획이었다.
과학기술처로부터 용역을 의뢰 받은 곳은 한국전자기술연구소(KETI)였는데, KETI에서는 규격작업만 하고 생산업체 선정은 상공부에 맡겼다. 당시 교육용 컴퓨터를 생산하겠다고 신청한 회사는 삼성전관·동양시스템산업·삼보컴퓨터·동양나이론(효성컴퓨터)·삼성전자·대한전선·금성사·한국상역(한국컴퓨터) 등이었다. 대부분의 컴퓨터 조립회사들이 참여했는데, 내가 있었던 동양컴퓨터기술산업사는 빠졌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나 의욕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