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구리칩 시대" 앞당긴다

 세계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구리칩 기술을 적용한 제품 생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늦어도 내년까지는 구리칩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전망이다. 구리칩 기술은 반도체 회로 구성물질을 알루미늄 대신 구리로 바꿈으로써 처리속도를 크게 높이고 전력소비량을 줄이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7년 미국 IBM이 발표해 업계의 커다란 관심을 모았던 이 기술은 이후 많은 반도체 업체들에 의해 상용화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를 적용한 제품 생산이 가능한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기술을 채택한 칩이 대량 출하되지는 못하고 있다.

 구리칩 기술의 개척자인 IBM만이 이 기술을 적용한 파워PC를 일부 출하하고 있을 뿐 대부분 업체들은 여전히 제품 출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생산수율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업체들이 구리칩 시장의 선점을 노리고 생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긴 하지만 생산현장의 현실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업체라도 생산수율이 고작 50%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구리칩이 신기술이란 점을 고려할 때 50% 정도의 수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는 본격적인 제품 생산과 출하가 이루어지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50% 정도의 수율을 낼 수 있는 업체도 현재로선 IBM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많은 업체들이 수율상의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은 구리칩이 기존 알루미늄 칩과는 매우 다른 제조공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부분의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칩에선 알루미늄 배선이 유전체 위에 놓이게 되지만 구리칩에선 구리 배선이 유전체속 깊숙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리 배선을 형성하는 것 자체도 구리를 포함할 수 있는 탄탈륨 장벽 구축과 배선이 적절하게 채워지기 위한 얇고 고른 구리 기반층 구축, 전기도금을 이용한 배선 형성 등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완성돤 구리 배선은 또 화학기계적평탄화(CMP)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제조공정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구리칩 제조시 용해된 구리에 미세한 구멍이 생겨 칩의 저항값을 높일 우려가 있으며 CMP 공정을 거치는 동안 구리가 부식될 수 있는 등 잠재적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제조공정이 복잡하고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구리칩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 기술의 적용엔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텔의 경우 0.13미크론 선폭의 회로 가공기술이 채택될 2001년까지는 구리칩 양산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때 최근 적용하기 시작한 0.18미크론 기술 도입에 맞춰 구리칩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제조장비 등의 주변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여건이 좀 더 성숙할 때까지 이 기술의 적용을 보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IBM을 포함한 많은 업체들은 구리칩 생산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수율과 생산설비 도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 구리칩 생산에 따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술의 적용을 미룰 경우 시장이 형성된 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IBM은 지난해 이미 구리칩 기술을 적용한 데스크톱용 파워PC를 출하한데 이어 올 들어서도 서버용 제품을 개발, 연내 자사 생산 서버에 채택할 예정인 등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구리칩 생산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곳은 모토롤러와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 그리고 대만 업체들이다.

 AMD는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공장을 구리칩 전용 생산공장으로 해 4·4분기부터 본격 가동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0.18미크론의 애슬론 프로세서에 구리칩 기술을 전면 적용해 내년 말까지 처리속도를 1㎓대로 높일 계획이다.

 모토롤러도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서 구리칩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를 양산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업체중에선 유나이티드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UMC)와 대만반도체제조회사(TSMC)의 구리칩 생산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UMC의 경우 칩 상층부의 2개층에 구리를 사용해 0.18미크론 기술로 가공한 반도체 시제품을 이번 분기말 발표하고 4·4분기부터 공급할 계획이다.

 TSMC 또한 UMC와 비슷한 일정을 갖고 구리칩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일부에선 구리칩이 시장형성 초기엔 알루미늄 칩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겠지만 3년내 그 관계가 역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