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06)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는 힘을 얻었다. 약간의 자금을 얻었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나를 고무시킨 것이다. 그것은 잘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믿음이었다. 어머니가 믿고 있는 그 팔자는 점차 나에게도 세뇌 작용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불안했던 나는 좋아질 것이라는 내 팔자가 상기되고, 그 사실은 별거 아닌데도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들이를 했다. 그 동안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어떤 형태의 사업이든 그것을 꾸려 나가는 데는 주위의 인적 구조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서울의 컴퓨터 회사에 취업이 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도 육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군 복무라는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 군대 생활도 내가 공부하는 컴퓨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데다 사회와 격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그 동안에 사귀었던 관련 인사들을 만나 조언을 얻기로 했다.

 나는 제일 먼저 은행에 있는 송혜련에게 전화를 해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는 반기면서 시간을 내주었다. 오전 중에 나는 청계천 세운상가에 들려 함께 골프를 쳤던 공 선생을 비롯한 몇몇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듣자 자기 가게로 나오라고 했다. 보수도 더 좋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창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만 해도 벤처창업이라는 것이 신선한 것이라기보다 무모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이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가게를 내어 부품을 조립하고 선진국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유일한 벤처창업이었던 것이다.

 나는 청계천 세운상가에 가게를 얻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포 임대비용이 비싸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기존에서 탈피해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선진국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선진국들을 앞지르는 신제품을 개발해 내고 싶은 욕심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고예? 다른 데서 스카우트하던가예?』

 송혜련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는 은행에서 조금 떨어진 청진동 골목에서 식사를 하며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도 자주 시계를 보았다. 은행 창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의 점심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교대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도시락을 지참하여 회사 숙직실에서 처리하였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긴 시간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