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업계 인력난 "최악"

 『사람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겠다.』 미국 실리콘밸리지역 정보기술(IT)업계 경영자나 인사담당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실제로 미국 IT업계의 인력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적당한 사람을 쓰지 못해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등의 사태도 빈번히 일어나고 인력수급 불안정이 기업의 이익감소까지 초래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시장조사업체인 메타그룹의 집계에 따르면 지금 사람을 구하지 못해 비어있는 IT분야의 일자리만 해도 40만개에 달한다. 게다가 이 수치는 매년 25%씩 늘어나고 있어 이 추세라면 오는 2005년에는 120만개의 일자리가 담당자를 구하지 못해 비어 있게 된다는 계산이다.

 IT부문 경영진 2700명이 회원으로 있는 미 정보관리협회(Society for Information Management)에 따르면 현재의 인력난은 지난 50년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며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인력부족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IT시장의 초고속 성장으로 수요인력이 공급인력 증가속도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실제로 미국 IT산업은 여타 산업들과 수치적 비교가 힘들 정도의 성장률을 구가해 왔다.

 덕분에 지난 87년부터 98년에 걸쳐 IT부문 인력의 실업률은 2% 정도임에 반해 전체 부문의 실업률은 42년만에 최저수준인 올해 3월의 경우에도 4.2% 정도로, IT부문과 나머지 부문의 차이가 크다. IT부문 종사자수는 83년부터 98년까지 190%가 증가, 210만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전체 부문의 6배가 넘는 수치다.

 여기에다 이러한 증가속도가 이후에도 늦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 상무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IT 중에서도 핵심부문인 컴퓨터 개발자, 컴퓨터 엔지니어, 시스템 분석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수는 지난 96년 150만명에서 2006년 26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공급인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높은 이직률도 문제가 되고 있다. IT부문 인력공급업체인 다윈 파트너스사가 150명의 IT부문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T부문 인력 이직률이 11∼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력수급이 이들이 가장 신경쓰는 3가지 문제 중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포메이션위크지가 IT부문 인사담당자들 2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평균 12%의 자리가 직원을 채우지 못해 비어있고 비어있는 자리 중 37%는 이전 담당자의 이직에 따른 빈 자리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응답자의 과반수는 이러한 인력부족이 회사 이익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90%가 이로 인해 프로젝트 지연이나 미결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수요가 공급을 대폭 앞지르면서 IT부문 종사자들의 몸값은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특히 기술 외에 사업능력까지 갖춘 사람들은 최고가에 팔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업들은 똑똑한 직원들이 다른 업체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수를 대폭 올리고 새로운 보너스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갖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IT회사 직원 봉급이 전체 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0% 정도에서 올해는 40%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인력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인력을 임시 조달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현재 미국 IT부문 종사자의 20∼30%가 아웃소싱 형태이며 이러한 추세는 향후 몇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공동 훈련프로그램을 실시, 훈련비용을 줄이는 한편 애써 키운 인재를 서로에게 빼앗길 위험을 줄이기도 하고 이미 고용하고 있는 비IT부문 인력을 훈련을 통해 IT부문 전문가로 키워내기도 한다.

 의료업체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사는 자사 3000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훈련프로그램을 실시, 비 IT직원들을 IT전문가로 길러내고 있다. 메인프레임시스템, 클라이언트서버 환경,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이 회사는 지난 2년간 90명의 비IT부문 직원들을 IT부문으로 재배치했다.

 대학과 제휴관계를 맺고 인력수급을 해결하는 업체들도 증가하고 있다. 졸업 후 일정기간 동안 회사에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학재학 중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인력부족을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해외인력의 유입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전문인력을 풀타임이나 시간제로 6년까지 고용할 수 있는 특별비자 프로그램인 「H­1B」를 진행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이 그 혜택을 입고 있다. H­1B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으로 입국한 해외인력 수는 지난해 6만5000명에서 올해 11만5000명으로 대폭 늘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인도, 중국,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지난해 실리콘밸리지역 IT업계에서 차지한 비중이 전체 인력의 2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지난 84년 13%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로 IT인력 부족현상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해외인력 유입증가는 지속될 전망이다.

 IT부문 인력부족 문제의 심각성은 교육계와 정부로까지 번졌다.

 교육계에서는 지난 3년간 대학 컴퓨터공학 전공학생의 수를 2배 이상 늘렸으며 미국 정부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자국출신 IT인력 육성책을 펴기로 했다.

 윌리엄 데일리 미 상무장관은 최근 내놓은 IT분야 인력수급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전 교육과정에서 수학 및 과학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청소년들이 과학 및 기술분야를 향후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도록 IT부문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데일리 장관은 또한 기업과 교육계, 정부가 공동으로 전문인력 교육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2006년까지 캘리포니아, 텍사스, 버지니아주가 IT부문 인력공급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여성이나 소수민족의 IT분야 진출이 활발해지면 인력부족 현상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들이 IT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년 기준 12%이고 아프리카계나 라틴아메리카계 등 소수민족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