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를 만난 이후 나는 몇 곳의 거래처에 들렀다. 다른 곳에서는 내가 창업을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나들이를 한 것이다. 이제는 회사를 차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술자로서 연구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업계의 동향과 그 흐름을 파악하면서 마케팅을 짜야 했다. 그것은 좋으나 싫으나 해야 할 일이었다. 저녁이 되어 나는 청계천의 세운상가로 갔다. 그곳에서 바이트 숍을 하는 동아컴퓨터 가게에 들렀다. 공민호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 선생은 법대 출신으로 기술자가 되었지만, 법학에 대해서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경제의 구조적인 모순과 까다로운 관계법을 들먹였다. 청계천 골목에서 우리는 청국장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다. 그는 열띤 언성으로 말했다.
『최 선생,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계법이 바뀌고 부처가 바뀌니 그게 될 말이오? 거기다가 부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으니 그 아래에 있는 우리 업자들만 죽어나는 것이지. 선생이 창업을 한다니 반갑소.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과 우리는 다르오. 우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해야 하오.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그들에 비해서 십년 이상 뒤져 있는 판국에 그들처럼 일을 했다가는 실패요.』
『십년 정도가 아니라 삼십년 정도 뒤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나의 말에 그가 히죽 웃었다.
『그렇지만 선생이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그쪽 동네에 팔면 그것은 얘기가 다르지요. 어쨌든 그쪽 동네에서 성공한 선배들의 경영 전략을 배워서 해내시오. 빌 게이츠나 휴렛 패커드를 배우면 될 것이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 창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몇 명의 과정을 조사했다. 그것은 내가 매달 구매해서 읽고 있는 미국의 컴퓨터 월드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빌 게이츠는 십대 때부터 컴퓨터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것은 베네통처럼 사회의 흐름을 간파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한 것은 우수한 운용체계 개발 때문이지만, 경영의 전술도 뛰어났다. 직원들의 개성을 보장하면서 스톡옵션으로 창의성을 자극했고, 전문 경영인을 활용했으며, 경쟁자와 전술적 제휴도 서슴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 제품 하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변신을 했다. 처음에는 베이식 관련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했지만, 곧 IBM과 제휴하면서 MSDOS와 윈도 개발이라는 성과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