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국에 갔을 때 그곳 철도청 직원이 무려 430만명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철도관련 업무는 물론 종업원과 관련된 일을 직접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생산성과 전문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엔 구조조정을 해서 330만명선으로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18개월간 우리나라도 금융·재벌 및 공기업의 구조조정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짧은 산업화 역사와 제한된 내수시장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수평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것은 어쩌면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취약한 관련산업 기반 때문에 내가 직접 해야 믿음이 가고 직성이 풀리는 풍토가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회사 일로 빌딩임대 관련 전문기업을 찾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건물임대만을 전문으로 하는 규모있는 기업을 찾을 수가 없었다. 큰 회사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정작 특수분야로 가면 전문성 있는 기업이 드물다는 얘기다.
이러한 풍조는 직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문화 사회로 앞서간 미국에는 무려 2만3000여 직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1만1500여개밖에 없다. 미국에 있는 직업과 그 직업을 위한 시장이 한국에는 없다는 얘기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국가이면서도 아직 내로라 할 세계 일류 항목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로서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의 생산성이 구미 선진국의 절반 정도임을 감안할 때 과감한 업무처리 방식의 개선 없이는 세계 일류의 제품과 기업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내 사람」에 의한 업무처리 방식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외부와의 협업방식을 택해야 한다. 즉 기업간에 핵심 역량을 서로 나누고 각 기업은 자체 인력을 핵심기술 분야로 좁혀가면서 비핵심 분야는 외부에 맡기는 업무 및 인력의 아웃소싱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 길만이 대부분의 기업이 직접 갖추기에는 경제규모가 안되는 첨단기술 및 전문인력을 위한 시장을 형성해 주는 길이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IBM은 70년대부터 회사차량 운영을 아웃소싱해 왔다. 5년 전부터는 비서·관리·경리 직종의 일부를 외부 전문회사에 맡기고 내부 전산실은 호주 IBM에 아웃소싱했다.
물론 당시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우려와 직·간접적인 저항이 있었다. 특히 전산실의 경우에는 기술을 중시하는 회사의 특성으로 볼 때 경비절감 효과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주장에 많이 망설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5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부전산 경험을 고객지원에 투입함으로써 경쟁력이 오히려 커진 반면 잡다한 직종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로서는 상당한 업무를 더는 효과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조직의 힘을 사람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조직의 힘은 사람수가 아닌, 결과와 부가가치에서 나오는 시대가 도래했다.
또 「외부」의 문제는 인사관리·업무관리상의 문제다. 만약 철저한 직무분석과 작업목표의 설정, 이에 따른 인사평가 및 보상이 이루어지는 인사관리체제가 뒷받침된다면 「내부」 「외부」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외부」의 활용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기술의 시대, 정보의 시대, 지식경영의 시대라고들 한다.
어느 조직이고 어느 개인이고 모든 일을 직접 세계 일류의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결국 우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핵심 기술력을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아웃소싱 인프라를 얼마나 많이 빨리 구축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아이의 영양을 위해 어떤 소를 집에서 기를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시켜 시민이 원하는 다양한 양질의 우유를 제공케 할 것인가」하는 사회적인 인프라를 논의할 때다.
<신재철 한국IBM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