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지상파 디지털TV 방송의 전송표준으로 결정한 북미방식(ATSC:Advanced Television Systems Committee)의 방송규격을 놓고 국내외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ATSC 방송포맷이 도심의 건물 사이에서는 깨끗한 화면을 전송할 수 없는 심각한 결점을 안고 있어 방송포맷을 바꿔야 한다는 「싱클레어 브로드캐스트 그룹」의 주장을 인용 보도, 미국 방송가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싱클레어 그룹이 최근 미국 정부 및 방송 관계자 등을 초청해 미국의 방송포맷과 도심형으로 개발된 유럽의 디지털 방송포맷을 비교 시연한 결과, 미국의 ATSC 방송포맷은 도심에서 안테나를 정교하게 맞춘 상태에서만 화면을 전송할 수 있고 안테나 앞으로 차량이 지나가면 화면이 끊기는 현상이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비록 이 규격을 따르는 디지털 방송 송출장비 개발업체들은 이들 장비가 현재는 개선이 이뤄졌으며 앞으로도 급속히 개선될 것이라고 반박하고는 있지만 국내 방송계 전문가들조차도 『이번 실험은 그동안 인지하고 지적해왔던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달 초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아·태지역방송연맹(ABU) 세미나에서도 ATSC방식에 대한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고 한다. 아·태지역 국가 방송사들의 디지털 방송 테스트 결과가 발표된 이번 세미나에서 ATSC방식이 전반적으로 유럽 및 일본 방식보다 기능 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ATSC방식의 「문제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간 국내 방송 전문가들도 누누이 지적한 바 있고 국내 지상파 디지털 방송 표준을 결정할 당시에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이 ATSC방식으로 확정한 것은 현행 우리나라 아날로그 방송이 6㎒대역을 사용하고 있어 8㎒대역을 사용하는 유럽방식보다는 동일한 6㎒대역을 사용하는 북미표준을 채택하는 것이 유리한데다 국내표준을 결정할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표준이 완성되지 못했으며 북미시장 공략과 일본 방송장비업계의 국내 시장 잠식문제 등 산업적인 파급효과도 고려한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표준으로 정해진 ATSC방식의 문제점은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는데, 방송 전문가들은 국내의 경우 ATSC방식의 결함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산악지형이 많은데다 도시지역의 경우 건물의 밀집도가 높아 난청지역이 좀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방송은 아날로그와 달리 일정 수준 이상의 데이터가 수신되지 않으면 아예 방송을 수신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시청 안테나 시설을 갖추지 못한 일반 주택이나 고층 건물에 막힌 지역은 케이블TV나 중계유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디지털 방송 표준을 제정하는 것도 문제다. 기존의 논의를 모두 뒤집어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다 일정도 매우 촉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정부와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방송사 및 관련 업체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은 당장 디지털 방송 추진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었고, ATSC방식의 문제점들이 발상지인 미국에서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원론적인 것이라는 점도 핑계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아니다.
이미 이와 관련한 정부 방침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제는 기본 투자비만도 수조원에 달하고, 관련산업 및 국민생활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차질없게 실현하는 것이 최우선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발생가능한 모든 문제에 대처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며, 이를 철저히 검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득이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방식을 바꾸는 것까지도 검토해야 한다.
앞서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무리하게 일정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일본은 최근 디지털 방송 시험방송 시기를 18개월 연기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