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18)

 방태산은 키득거리고 웃었다. 우리는 지나간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새로운 정부에서 폭력조직을 일제히 소탕해서 군부대에 데리고 가 교육을 시킬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때 죽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혀를 찼다. 그는 나의 형이 죽은 것을 알고 있었고,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형은 그와 가까이 지냈으며, 어쩌면 형의 탈선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간이 나빠져서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의 거처가 내가 묵고 있는 하숙집과 같은 방향이어서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탔다. 그는 버스에 올라 안주머니에서 팸플릿을 꺼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조용한 차안에서 본의 아니게 여러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게 됨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바이옵니다. 금번 본 출판사에서는 그 동안의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전에 하지 않았던 과감한 영업 방안으로 염가 외판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외판원으로 바뀌어 연설을 하자 옆에 있던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외우고 있는 말인 듯 유창하게 떠들었다.

 『여러분들이 신문지상에서 일찍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오나, 오늘날 출판가는 날로 불황을 타고 있습니다. 선진 외국의 경우는 산업 경기가 불황을 타면 책은 더욱 잘 나간다고 하나,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산업 경제 불황이 닥치면 먼저 그 여파가 오는 곳이 출판가입니다. 이번에 본사에서 그러한 불황을 타개하고 침체된 독서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하여 한 방법으로 이렇게 나섰습니다. 본사는 또한 불황으로 넘어진 다른 출판사의 책도 인수했습니다. 그중에 삼십억원을 부도 내고 쓰러진 모 출판사의 책도 있습니다.

 여기 소생이 가지고 나온 책은 현대인의 지혜를 높여주는 전략적인 교양서로 사서삼경, 주역, 손자병법이 있습니다.』

 그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팸플릿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팸플릿과 함께 구매 약정서 용지도 있었다. 그것을 흔들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듣는지 마는지 모두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의 거리 상점에 불이 들어와 환하게 비쳤다.

 『이 동양사상 전집에는 공자와 노자, 맹자의 지혜가 있습니다. 이런 경서야말로 군자의 나라 한국인이라면 필히 읽어야 될 양서라고 생각합니다. 사서삼경, 주역, 손자병법을 모두 합하여 삼십육만원입니다만 특별 할인가로 해서 십이만원에 드리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홉 가지 전집을 보너스로 끼워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