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프리PC 열풍은 PC의 끈질긴 생명력을 새삼 실감케 한다.
세트톱박스나 개인휴대단말기 등 「포스트PC」를 외치며 급부상하고 인터넷 접속기기의 위력에 눌려 곧 사망선고를 받을 것만 같던 PC운명이 「프리PC」라는 업체들의 새로운 마케팅전략을 타고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전용기기가 PC를 대체하기보다 어디까지나 「컴패니언(보조)PC」로서의 목적을 갖고 태어난 것이니만큼 프리PC와 인터넷 단말기를 같은 대결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이용이 일상화되면서 웹접속에 초점을 맞춘 이들 단말기가 PC를 제치고 차기 인터넷시대의 주역으로 급부상하자 PC진영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미국을 달구고 있는 프리PC 열기는 PC시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제 막 만개하려는 인터넷 접속기기 진영에도 역으로 적잖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IDC의 예비자료에 의하면 지난 2·4분기만 하더라도 미국 PC시장은 저가PC와 프리PC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3% 늘어난 1080만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PC데이터의 보고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PC소매시장이 6월 한달동안에만 계절적으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작년동기비 35%의 기록적인 판매증가세를 보였다고 전했는데 여기에 프리PC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열기와 맞물려 미국 최대 인터넷서비스업체(ISP)인 AOL이 저가PC업체인 마이크로웍츠, 이머신즈와 차례로 손잡고 인터넷서비스를 결합한 프리PC 시장에 뛰어든 것을 비롯, 컴프USA나 서킷 시티 등의 대형 컴퓨터 유통점들 역시 ISP들과 짝지어 프리PC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프리PC는 인터넷 접속서비스 가입을 조건으로 환불프로그램 등이 적용돼 이용자에게 거의 공짜로 제공되는 PC. 따라서 그동안 「저가」와 사용의 간편성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이용자들을 온라인세계로 손짓하던 인터넷접속기기도 공짜PC 앞에서는 할말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데이터퀘스트의 한 분석가는 프리PC가 인터넷 단말기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이들 단말기의 판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물론 인터넷 접속기기는 일반PC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TV세트톱박스의 경우 사용이 아주 간편하며 부팅시간도 PC처럼 오래 걸리지 않는다.
또 위성을 이용하면 속도가 평균 128Kbps, 최대 4Mbps로 고속 인터넷 접속은 물론 다양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위성방송처럼 받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가격에 있어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99달러에서 최고 199달러 정도로 일반PC에 훨씬 못미치는 가격에 인터넷 접속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웹 단말기의 특징이 프리PC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색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이머신즈 제품을 프리PC 품목으로 내건 서킷시티는 3년간의 인터넷 가입계약자들에 대해 환불프로그램을 적용, 실제 공짜로 PC를 공급한다.
이때 이용자는 매월 21.95달러의 인터넷 이용료만 부담하면 되며 100달러를 추가지불하면 프린터와 모니터를 구할 수 있다.
월 19.95∼24.95달러 정도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료를 주요 수입원으로 겨냥한 공급업체들에게는 PC를 저가에 공급하든 무료로 공급하든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세트톱박스 등 인터넷 접속기기업체들은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이제 웹단말기의 가격우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위성을 통한 고속 인터넷 접속이나 「양방향 기능」이라는 기술적 측면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세트톱박스는 TV 시청과 인터넷 검색간의 신속한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웹TV등 세트톱박스업체들이 영화를 녹화·재생하게 해 주는 디지털VCR기능 등 고부가서비스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도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물론 위성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위성안테나 같은 장비와 요금 등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여기에 위성서비스업체들이 아직 완벽한 기술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프리PC 바람이 인터넷 단말기업체들의 시장전략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결국은 각각 고유의 수요기반을 바탕으로 심각한 영역침범 없이 병행,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